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蓀谷 李達

solpee 2009. 4. 23. 06:56

손곡 이달(蓀谷 李達 : 1539(?)~1609(?))

① 생애(生涯)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을 역임한 쌍매당 이첨(雙梅堂 李詹 : 1345~1405)의 후예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富論面) 손곡리(蓀谷里)에서 출생한 손곡(蓀谷)은 일찍부터 문장에 능하고 글씨에 조예(造詣)가 깊었다.

* 홍성 출생이라는 설이 있다 


그러나 어머니가 천인 신분(賤人 身分)이었기에 서얼(庶孼)로서의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그 능력 또한 쉽사리 세상에서 빛을 볼 수가 없었다.

  

 서포 김만중(西浦 金萬重 : 1637~1692)이


“손곡(蓀谷)의 작품(인「별리예장(別李禮長)」은 조선을 통틀어서 오언절구(五言絶句)의 최고작” 이라고 논평할 만큼 시재(詩才)와 문장력이 뛰어났기에 선조 때 사역원(司譯院)의 한리학관(漢吏學官)이 되기도 했으나, 자신의 뜻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곧 사직하고는 향리에 은거했음  


손곡(蓀谷)은 기녀(妓女) 홍랑(洪娘 : ?~?)의 연인으로 유명한 고죽 최경창(孤竹 崔慶昌 : 1539~1583)․ 가사문학의 효시인 옥봉 백광훈(玉峯 白光勳 : 1537~1582)과 함께 뜻을 모아 시사(詩社)를 조직한 후,


고죽(孤竹)과 옥봉(玉峯)의 스승인 사암 박순(思庵 朴淳 : 1523~1589)을 만나 당대(唐代)의 여러 시집(詩集)들을 접하게 되면서


시(詩)의 정법(正法)이 당시(唐詩)에 있음을 깨닫고 당시인(唐詩人)의 시체(詩體)를 탐구하는 한편, 율시(律詩)와 절구(絶句)를 지어 내기 시작해 5년 동안 오로지 시법의 연구에만 몰두한 결과,


신라와 고려를 통틀어 당시(唐詩)에서 아무도 손곡(蓀谷)을 따를 수 없다는 평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膾炙)되면서  고죽(孤竹)과 옥봉(玉峯)을 제치고 삼당시인(三唐詩人)의 제일인자로 꼽히게 되었다.


특히 절가곡(律絶歌曲)과 칠언율시(七言律詩)에 능했던 손곡(蓀谷)의 대표작으로는「반죽원(斑竹怨)」과「만랑가(漫浪歌)」등이 있다.

  

한편, 손곡(蓀谷)의 명성과 고결한 인품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당시의 명문 귀족이었던 초당 허엽(草堂 許曄 : 1517~1580)이 자식들인 난설헌 허초희(蘭雪軒 許楚姬 : 1563~1589)와 교산 허균(蛟山 許筠 : 1569~1618)을 보내 제자로 삼아 줄 것을 부탁하자,


손곡(蓀谷)은 그들 남매에게 평민시인으로서의 자신의 이상을 전수시켰는데, 훗날 교산 허균이 서자(庶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홍길동전(洪吉童傳)』을 쓰거나  적서 타파(嫡庶 打破)를 주장한 것이라든지, 양반 사회에 대한 반항적인 자세와 함께 풍자적이면서도 서민 생활을 옹호했던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 정신은 손곡(蓀谷)의 정신적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자 허균이 애절하면서도 예리한 필치로 쓴 전기소설(傳記小說)『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한 손곡(蓀谷)은 허균(許筠)이 반역죄로 참형 당했던 그 해에 역시 57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쳤다.

 

 

 

신밭에서 가을벼를 베는데

구름낀 봉우리 주막에 얹혀 있어

시아비와 시어미 밤중에 다듬이 소리

달 아래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네.

 

   신점추석 [新店秋席]

 

추천찰 산전 [秋千찰 山田]

초점의 운헌 [草店依 雲獻]

옹고사 야침 [翁姑事 夜砧]

월하성 근원 [月下 聲近遠]

 

신점 ; 新店 - 새로연 가게, 새가게,

시대상으로 보아 개업한 주막으로 해석이 옳을듯.

추석 ; 秋席 - 가을자리

신점추석 ; 新店秋席

가을 주막 자리에서

[시 내용을 보아서는 주막집 다듬이 소리가 맞음]

 

秋千찰山田 [가을, 산밭의 온갖 곡식을 수확하다]

찰 ; 거둘찰, 인터넷상에 나오지 않음.

사찰찰 ; 刹 에서 木을 없애면 거둘 찰, 수확할 찰 이 됨.

 

초점 ; 草店 초가지붕의 주막 [가게]

의운헌 ; 依雲獻 구름에 의지에 바치다.

구름낀 봉우리 주막에 얹히다.

 

옹고 ; 翁姑 늙은 시어머니.

고 ; 女 + 古 = 姑 시어머니고. [오래된 여자는 시어머니이다.]

예서는 시아버지와 시어미로 번역됨.

 

사야 ; 事夜 - 밤일

침 ; 砧 - 다듬이돌 침

밤에 다듬이 일을 하다.

 

월하 ; 月下 - 달빛아래

성근원 ; 聲近遠 - 소리가 가깝게 그리고 멀리

 

 

가을 초가 다듬이 소리

 

산밭에서 가을곡식을 거두는데

구름낀 산봉우리 주막에 의지하네

늙은 시어머니 홀로 다듬이 소리

달빛아래 그 소리가 멀리 까지 들리네

 

 

       방림역(芳林驛)


        서양하계교(西陽下溪橋) 

        낙엽만추경(落葉滿秋逕) 

        소소객행고(蕭蕭客行孤)  

        마도한계영(馬渡寒溪影)

     

     서녘 해 계곡 다리에 비추고

     낙엽은 가을 길에 가득하다     

       쓸쓸한 나그네길 외롭고

     말이 차가운 시내를 건너는 그림자뿐.



 ** 손곡(蓀谷) 이달(李達)은 평생을 유랑으로 떠돌다 죽은 인물로 , 당시의 사회를 질타한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스승이기도 하다.


 이러한 그가 강릉을 지나다가 쓴 시로, 나그네의 고독을 나타내기 위해, 詩語들이 한결같은 은유의 효과를 가지고  서양(西陽), 낙엽(落葉). 추경(秋逕). 소소(蕭蕭). 고(孤)들로 이루어져 나그네 길을 수식어로 기능하고 있지요.

 자칫 이완된 진부한 감정의 표출을 하기 쉬웠으나, 마지막 구인 한계(寒溪)에 이르러 그 차가운 감각에 의한 자제의 효과를 환기 시키는 수품(秀品)이지요.

 인적 없는 가을 숲길의 석양에 조촐하지만, 느릿느릿하게 차가운 시내를 건너는 나그네의 말 탄 그림자라는 한 폭의 수묵화의 여유와 여백이 묻어납니다.


  마지막 ‘그림자 영(影)’에서 이 시를 맺고 있는데, 서자(庶子)로써 평생을 떠돌아야 하는 설움 가득한 나그네가 울음을 삼키며 자기 그림자를 뒤돌아보는 데, 이 시의 묘미가 있다



  佛日庵 因雲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寺在白中雲 (사재백중운)

   절이라 구름에 묻혀 살기로

 

  白雲僧不掃 (백운승불소)

  구름이라 스님은 쓸지 않아

 

  客來門始開 (객래문시개)

  바깥손 와서야 문 열어 보니

 

  萬壑松花老 (만학송화로)

  온산의 송화꽃 하마 쇠었네

 

 지기 맘대로 해석

사(寺) 절집

재백중운 (在白中雲) 구름속에 묻혀 있어

백운(白雲) 흰구름

승(僧) 중

불소(不掃) 청소하지 않아

소/掃 ; /쓸 소, 청소할 소

객래(客來) 손님이 오다

문시개 (門始開)비로소 문을 여니

손이 와서 문을 여니

만학(萬壑) 일만개 골짜기 ; 모든 골짜기

학/壑 패일학, 골짜기 학

송화(松花) 소나무 꽃

로 / 老 늙을 로, 노인로, 쇠일 로,

 

절집이라 구름에 묻혀 살기로

얼마나 게으르면 청소도 하지않아

손님이 와서야 비로소 문을 여니

마당을 쓸어 본지가 언제 이런고.

 

(게으른 중을 질타 하는 시)

 
 
손곡 이달 시비

 

 임경업 장군 추모비에서 조금 떨어진 곁에 있다. 나무 사이로 어둠 속에서도 시비문이 빛나고 있다. 손곡 이달은 삼당시인이었는데, 즉 우리나라에서 당나라의 시에 관심을 갖었던 세 사람 중 한 분이란 뜻이다. 조선 선조 때 시인으로 충남 홍성 출생이며, 이곳 원주 부론면 손곡리에서 살았다. 평생 시를 읊고 지으며, 허균에게도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비에는 한시 1편과 번역 글씨가 있다.

 

시골 밭집 젊은 아낙네

저녁 거리 떨어져서

 

비 맞으며 보리 베어

숲 속으로 돌아오네.

 

생나무에 습기 짙어

불길마저 꺼지도다.

 

문에 들자 어린 아이들

옷자락 잡아다리며 울부짖네.

 

 그 당시 삶의 애환을 적은 시로 눈시울을 적신다. 이것으로 문화 유적지 탐방은 마쳤지만 그외 여러가지 보물이 많이 묻혀있는 원주다. 그런 사실을 이곳에 와서야 알았다는 사실이 더욱 기쁘다. 마을 전체가 보물단지로 지정된 곳도 있고, 마을 이름이 보물 유적지 이름을 따서 지은 곳도 있다. 여러가지로 유익한 문학 유적지 탐방이다


  가을 하늘에 한 조각 달

  한밤중에 시름이 이네

  강남에 외로운 나그네 있으니

  객사 다락엔 비치지 마소

 

       登驛樓

 

                      蓀谷 李達

 

  一片秋天月 中宵生遠愁

  江南有孤客 休照驛邊樓

 


 

   동산역에서

 

시골집의 젊은 아낙은

저녁걸가 없어서

빗속에 나가 보리를 베어

숲속으로 돌아오네

생나무는 축축해서

불길도 일지 않는데

문에 들어서니 어린애들은

옷자락을 잡으며 우는구나

 

 


   < 나그네 시름 >

 

  이 몸이 어찌 다시 동서를 따지랴

  뿌리 뽑힌 쑥처럼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네

  한 집 살던 친지들 모두 다 흩어진 뒤에

  타향에서  새해를 난리중에 맞이하네

  돌아가는 기러기는 천봉 눈 위로 그림자 지고

  스러지는 호각 소리는 새벽바람을 타고 날리는데

  성문 바깥길은 물길 구름 속 서글퍼서

  꽃다운 풀 볼수록 고향생각 끝이 없어라 .

 

 

 

  <그대를 보내고>

 

  오월이라 앵두가 익고

  산마다 소쩍새가 우네

  그대를 보내고 부질없이 눈물 흐르는데

  꽃과 풀들은 저마다 무성키만 해라

 

 

 


  <가림에서 안생과 헤어지며>

 

  산이 가까워 저녁 그늘 짙게 깔렸는데

  날이 저물자 가을 기운 더욱 서글퍼라

  내일 아침 백제땅 가는 길에 오르면

  뒤돌아보며 그리워하겠지

 

 

 


  <어느 곳이 그대 집이던가>


  서울 와서 떠도는 나그네요

  구름 낀 산 어느 곳이 그대 집이던가

  가냘픈 연기가 대숲길에 피어오르고

  보슬비에 등꽃이 지는 그곳이라오

 

타고난 재능에 비해 불우한 삶을 살았던 蓀谷(손곡) 李達(이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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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재능에 비해 불우한 삶을 살았던 蓀谷(손곡) 李達(이달)

얼굴이 단정하지 못하고 성품이 호탕하여 예법에 구속되기를 싫어하는 성미라 가는 곳마다 업신여김을 당하며, 몸 붙일 데가 없는 비렁뱅이, 천덕꾸러기로 자유분방하여 한 곳에 정착해 있지를 못하고 유랑하면서 시와 술을 즐기면서 일생을 불우하게 보내었다.

아버지 이수함(李秀咸)과 홍주 관기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기생이었던 탓에 글재주가 뛰어나도 세상에 쓰이지 못했다.
한시의 대가로 문장과 시에 능하고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신분적 한계로 타고난 재능 세상에 발휘해 보지 못하고 살았다.
그는 벼슬살이하던 知人들의 부임지를 떠돌며 비렁뱅이로 살았으나. 그의 몇 편의 빛나는 시로 하여 오늘에 이르도록 이름을 잃지 않고 있다

또 허균은 그를 추모하는「손곡산인전」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蓀谷(손곡)의 얼굴이 단아하지 못한데다가 性格이 또한 호탕하여 절제하지 않았고, 게다가 世俗의 禮法을 익히지 않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에게 미움을 입었다. 그는 古今의 모든 일과 自然의 아름다운 경치를 이야기하기 즐겼으며, 술을 사랑하였다. 글씨는 진체(晉體)에 능하였다. 그의 마음은 가운데가 텅 비어서 아무런 한계가 없었으며, 살림살이를 돌보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性品 때문에 그를 사랑하기도 하였다. 그는 평생토록 몸 붙일 곳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사방에 비렁뱅이 노릇을 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천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가난과 곤액 속에서 늙었으니, 이는 참으로 그 시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그의 몸은 곤궁했지만 그의 시는 썩지 않을 것이다. 어찌 한때의 富貴로써 그 이름을 바꿀 수 있으리오.
허경진 역 『손곡(蓀谷) 이달(李達)의 시선』(평민사,2001) p.122

손곡(蓀谷)은 청아한 시편들을 많이 남겼다 그 시대의 아픔을 노래한 작품 중 한 시골 늙은이가 어린 아이와 더불어 밭머리의 무덤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돌아오는 모습을 그린 작품 제총요(祭塚謠)는.

白犬前行黃犬隨   野田草際塚 ? ? 갇힐 류
백견전행황견수   야전초제총류류

老翁祭罷田間道   日暮醉歸扶小兒
노옹제파전간도   일모취귀부소아

흰둥이가 앞서고 누렁이는 따라가는데
들밭머리 풀 섶에는 무덤이 늘어서 있네.
늙은이가 제사를 끝내고 밭 사이 길로 들어서자,
해 저물어 취해 돌아오는 길을 어린 아이가 부축하네.

「祭塚謠」제사를 끝내고 (허경진 역)

老人과 어린 아이가 어떤 사이인지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도 조손간(祖孫間)으로 짐작된다. 무덤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노인의 아들, 그러니까 아이의 아버지일 것만 같다.
주인공은 젊은 나이에 원통하게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무슨 까닭으로 세상을 일찍 떴을까? 어쩌면 전쟁터에 끌려가서 전사한 것은 아닐까? 제2행에서 무덤들이 풀 섶에 늘어서 있다는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런 죽음이 한둘이 아닌 것 같다. 마을의 젊은이들을 한꺼번에 앗아간 전화를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 壬辰倭亂으로 말미암아 農村의 젊은이들은 징집되어 얼마나 많이 목숨을 잃었을 것인가. 그래서 마을엔 老人과 兒女子들뿐 젊은 사람은 없다. 죽은 아들의 기일을 맞아 노인은 어린 손자를 데리고 묘를 찾았으리라.
무덤 앞에 쪼그려 앉아 어린 손자를 바라다본 노인은 세상을 원망하며 한 잔 두 잔 기울인 술에 그만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할아버지의 팔을 붙들고 비틀거리면서 밭 사이 길을 들어서는 모습이다.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앞서 가는 두 마리의 무심한 개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구름 속에 파묻힌, 俗世와 멀리 떨어진 절은 평소에 찾아오는 사람도 없으니 문을 닫은 채 길도 쓸지 않는데, 쓸리는 것이 낙엽이 아니라 구름. 손님이 와서 비로소 문을 열어 보니 어느 듯 온 산에 松花로 시간의 흐름을 초월한 채 自然과 함께 지내는 경지를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다.

?佛日庵 因雲/ 불일암 인운 스님에게 -蓀谷(손곡) 李達(이달)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사재백운중     백운승불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객래문시개      만학송화로

절집이라 구름에 묻혀 살기로
구름이라 스님은 쓸지를 않아
바깥 손 와서야 문 열어 보니,
온 산의 송화꽃 하마 쇠었네.
*출전: 손곡집(蓀谷集)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에 먹을거리가 떨어졌다.
젊은 아낙은 빗속에 들로 나가서 보리를 베어 집으로 돌아온다.
어서 보리밥이라도 지어서 자식들 끼니를 해결해줘야 하는데 땔나무도 습기를 먹어서 불이 잘 붙지 않는다.
게다가 어린 딸은 어머니 옷을 붙잡고 울기까지 한다.
비와 습기에 젖은 땔나무 등의 소재들은 그 당시 백성들의 처량한 삶을 표현하고 있다.

손곡(蓀谷) 이달이 동산역(洞山驛)이라는 곳을 지나며 지었다는 시다. 실제로 본 것을 작품으로 옮겼다는 보리 베는 노래는

刈麥謠 (예맥요)보리 베는 노래 -손곡(蓀谷)이달

田家少婦無夜食    雨中刈麥林中歸
전가소부무야식    우중예맥림중귀

生薪帶濕煙不起    入門兒女啼牽衣
생신대습연불기    입문아녀제견의

시골집 젊은 아낙이 저녁거리가 없어서
빗속에 보리를 베어 수풀 속을 지나 돌아오네.
생섶은 습기 머금어 불도 붙지 않고
문에 들어서니 어린 딸은 옷을 끌며 우는구나.

이달은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비참하게 사는 민초들의 모습을 보고 그 정황을 곡진하게 그린 시를 여러 수 남겼는데, 이 작품도 그 중 하나입니다

獨鶴望遙空     夜寒擧一足
독학망요공     야한거일족

西風苦竹叢     滿身秋露滴
서풍고죽총     만신추로적

학 한 마리 먼 하늘 바라보며
밤도 추운데 다리 하나 들고 있구나.
서녘 바람은 대나무 숲을 괴롭히고
온몸을 가을 이슬이 적셨구나.

 

 


산사(山寺)/손곡 이달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사재백운중 백운승불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객래문시개 만학송화노

절집은 흰구름 가운데 자리하고
그 흰 구름을 스님네는 쓸지도 않네.
손님이 찾아와서 문이 비로소 열리니
송화가루 골짝마다 가득하구나.

 

 



박조요(撲棗謠) 대추따는 노래-손곡

隣家小兒來撲棗 老翁出門驅小兒
린가소아래박조 노옹출문구소아

小兒還向老翁道 不及明年棗熟時
소아환향노옹도 부급명년조숙시

이웃집 꼬마가 대추 따러왔는데
늙은이 문 나서며 꼬마를 쫓는구나.
꼬마 외려 늙은이 향해 소리 지른다.
내년 대추 익을 때는 살지도 못할걸요.

파란하늘 아래 빨갛게 대추가 익어가는 농촌의 가을 풍경을 소묘한 것 이웃집 대추가 먹고 싶어 서리를 하러 온 아이가 있고. 작대기를 들고 나서는 늙은이가 있다. 서슬에 졸라 달아나던 꼬마 녀석도 약이 올랐다. 달아나다말고 홱 돌아서더니 소리를 지른다. 영감 내년엔 뒈져라 그래야 내년엔 마음 놓고 대추를 따먹을 수 있을 테니 하는 심정...

습수요(拾穗謠) 이삭줍는 노래 -이달(李達)

田間拾穗村童語 盡日東西不滿筐
전간습수촌동어 진일동서불만광

今歲刈禾人亦巧 盡收遺穗上官倉
금세예화인역교 진수유수상관창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의 말이
하루 종일 동서로 다녀도 바구니가 안 찬다네.
올해에는 벼 베는 사람들도 교묘해져서
이삭 하나 남기지 않고 관가 창고에 바쳤다네.

당시 농촌의 수탈당하는 생활을 그린 작품으로 농민의 뼈아픈 아픔 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관리들의 수탈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이 시다.
밭고랑에서 이삭 줍는 시골 아이들은 이삭줍기마저 어려워 바구니가 차지 않는다는 것은 관가의 수탈이 혹심하여 농민들의 마음까지도 빼앗아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화학(畵鶴)그림속에 학

獨鶴望遙空 夜寒擧一足
독학망요공 야한거일족

西風苦竹叢 滿身秋露滴
서풍고죽총 만신추로적

외로운 학이 먼 하늘 바라보며,
밤이 차가운지 다리 하나를 들고 있네.
가을 바람에 대숲도 괴로워하는데.
온 몸이 가득 가을 이슬에 젖었네.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고독과 슬픔, 모순적 현실을 차가운 밤으로 비유한 글은 자신을 둘러싼 짙은 어둠과, 발이 시린 추위 속에서도 학은 이슬로 제 몸을 씻으며 먼 하늘을 응시(요공 遙空)하고 있다. 그처럼 학이 어떤 현실의 질곡과 간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원대한 기상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대숲을 건너온 투명한 이슬, 이 가을밤 그토록 해맑은 정신이 있어 처참한 현실에서 잠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移家怨   이사가는 도중에 (이달)

老翁負鼎林間去     老婦携兒不得隨
로옹부정림간거      노부휴아부득수

逢人却說移家苦      六載從軍父子離
봉인각설이가고      육재종군부자리

영감은 솥을 지고
숲으로 사라졌는데,
할미는 아이를 끌고
따라가지를 못하는구나.
사람들 만날 때마다
집 떠난 괴로움을 하소연하는데,
여섯 해 동안 종군하노라
애비, 자식마저 헤어졌다네.
蓀谷集」卷6-4)

무거운 부역으로 인해 민중들이 제 고향에서 살지 못하고, 유리하는 괴로운 모습을 그리고 있는 시이다. 허균은 이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시를 보게 한다면,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깜짝 놀라서 깨달을 것이다. 그들이 병들어 파리해진 백성들을 살릴 수 있도록 훌륭한 정치를 베푼다면, 백성들을 감화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니, 어찌이것이 작은 일이겠는가? 글을 지으면서도 세상의 가르침에 벗어난다면, 이 또한 헛되게 글을 지을 뿐이게 된다. 이러한 글들을 짓는 거스장님이 글을 읽거나 공교롭게 분간을 하는 것보다 어찌 현명하지 않겠는가?"

도망(悼亡) 죽은 아내를 애도 하며
손곡(蓀谷)이 자신(自身)의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지은 시(詩)로서 소동파(蘇東坡 : 1036~1101)의 시어(詩語)를 본받아 지은 작품(作品)인데, 교산 허균(蛟山 許筠)은『학산초담(鶴山憔談)』에서 “시(詩)가 너무 아름답고 정(情)을 끌기에 옛 사람의 말을 빌어다 쓴 것도 생각지 못하였다.”고 평(評)을 하기도 했다.

羅?香盡鏡生塵    門掩桃花寂寞春
나위향진경생진  문엄도화적막춘

依舊小樓明月在   不知誰是捲簾人
의구소루명월재   부지수시권렴인

깁 방장엔 향(香)내 사라지고 거울엔 먼지 가득한데
문은 닫히고 복사꽃 피어나 봄은 더욱 쓸쓸하구나
작은 누각(樓閣)엔 옛날처럼 달이 밝은데
누가 있어 저 주렴(珠簾) 걷을 것인고

그의 시는 방랑 생활에서 씌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곳곳을 떠돌아다니면서 만난 아름다운 경치를 시로 읊었고, 자신이 목격한 농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시로 옮겼다.

'선산 가는 길(善山道中)'

西風吹葉 葉聲乾 長路悠悠 厭馬鞍
서풍취엽 엽성건 장로유유 염마안

數口在京 家食窘 一身多病 旅遊難
수구재경 가식군 일신다병 여유난

가을바람 불어와 잎새마다 마른 소리
먼길은 아득하여 말안장도 싫증나네
두어식구 서울에선 먹을것 없을테고
이 한 몸 병이 많아 여행길도 어렵구나


또 다른 도망(悼亡) 죽은 아내를 애도 하며 추사 김정희

悼亡(도망)죽은 아내를 애도 하며 金正喜(김정희)

那將月老訟冥司 來世夫妻易地爲
나장월로송명사 내세부처역지위

我死君生千里外 使君知我此心悲
아사군생천리외 사군지아차심비

나중에 저승엘 가서 월하노인과 송사를 해서라도,
다음 세상에서는 부부의 지위를 바꾸어 놓으리라!
나는 죽고 그대는 천리 밖에 살아있어,
그대로 하여금 지금의 이 애통한 마음 절감케 하리라!

* 月下老人(월하노인)
진서(晉書) 예술전(藝術傳)과 속유괴록(續幽怪錄》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당나라 초기, 정관(貞觀) 2년에 위고(韋固)라는 청년이 여러 곳을 여행하던 중에 송성(宋城:지금의 허난 성)에 이르렀을 때 어느 허름한 여관에 묵게 되었다. 그날 밤 휘영청 밝은 달빛 아래 한 노인(月下老人)이 자루에 기대어 앉아 커다란 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위고가 물었다. "무슨 책을 보고 계십니까?" "이것은 세상 혼사에 관한 책인데 여기 적혀 있는 남녀를 이 자루 안에 있는 빨간 끈(赤繩)으로 한번 묶어 놓으면 아무리 원수지간이라도 반드시 맺어진다오." "그럼 제 배필은 어디 있습니까?" "송성에 있네. 북쪽에 채소 파는 노파가 안고 있는 아이가 바로 짝이네." 그러나 위고는 참 이상한 노인이라고만 생각하고 그 말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나 위고는 상주(相州)의 관리가 되어 그 고을의 태수의 딸과 결혼하였다. 17세로 미인이었다. 어느 날 문득 예전 생각이 나 부인에게 월하노인의 말을 이야기 해주었다. 그러자 부인은 깜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저는 사실 태수의 친딸이 아닙니다. 아버지가 송성에서 벼슬하시다가 돌아가시자 유모가 채소장사를 하면서 길러주었는데 지금의 태수께서 아이가 없자 저를 양녀로 삼으신 것입니다."

* 氷上人(빙상인)
중매에 관한 또 다른 이야기가《진서》 색담전에 실려 있다. 진(晉)나라에 색담이란 점쟁이가 있었다. 그는 천문과 꿈해몽에 대해 밝았다. 어느 날 영호책(令狐策)이라는 사람이 이상한 꿈을 꾸어 색담을 찾아왔다. "나는 얼음 위(氷上人)에 서 있고 얼음 밑에는 누군가가 있어 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통 생각이 나지를 않습니다." 색담이 해몽을 해주었다. "얼음 위는 양(陽)이며 그 밑은 음(陰)이다. 이 꿈은 당신이 중매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혼사는 얼음이 풀릴 무렵 성사될 것이다." 과연 영호책은 태수로부터 자기 아들과 장(張)씨의 딸을 중매 서 달라는 부탁을 받아, 얼음이 풀릴 무렵에 이 결혼을 성사시키게 되었다.

이 두 이야기로부터 사람들은 중매인을 가리킬 때에 月下老人 또는 氷上人이라 부르고 이 둘을 합쳐서 月下氷人'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은이;이달(李達) 1539(중종 34)∼1612(광해군 4).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익지(益之), 호는 손곡(蓀谷)·서담(西潭)·동리(東里). 제자 허균(許筠)이 그의 전기 〈손곡산인전 蓀谷山人傳〉을 지으면서 “손곡산인 이달의 자는 익지이니, 쌍매당 이첨(李詹)의 후손이다.”라고 밝혀 신평이씨(新平李氏)인 것이 확인되었지만, 서얼이어서 더 이상의 가계는 확실하지 않다. 원주 손곡에 묻혀 살았기에 호를 손곡이라고 하였다.

이달은 당시의 유행에 따라 송시(宋詩)를 배우고 정사룡(鄭士龍)으로부터 두보(杜甫)의 시를 배웠다. 박순(朴淳)이 그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시도(詩道)는 마땅히 당시(唐詩)로써 으뜸을 삼아야 한다. 소식(蘇軾)이 비록 호방하기는 하지만, 벌써 이류로 떨어진 것이다.”라고 충고하면서, 이백(李白)의 악부(樂府)·가(歌)·음(吟)과 왕유(王維)·맹호연(孟浩然)의 근체시(近體詩)를 보여주었다.
주요저서 : 《손곡시집(蓀谷詩集)》주요작품 : 《습수요(拾穗謠)》《산사(山寺)

 

이달의 제자 허 난설허의 작품세계

 

              연밥따는 아가씨(采蓮曲)


                                                            허 난설헌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한데      맑은 가을호수 옥처럼 새파란데

  蓮花深處繫蘭舟(연화심처계란주)라       연꽃 무성한 곳에 목란배를 매었네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하고 물건너 임을 만나 연밥 따서 던지고는

  或被人知半日羞(혹피인지반일수)하네  행여 남이 알까봐 반나절 부끄러웠네



 

             

 여름철 가장 화려한 모습으로 자태를 드러내는 연꽃을 노래한 시를 소개합니다.

이 꽃은 오랜 옛날부터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두는 숱한 고사를 남겼습니다.

시인들도 이 꽃을 빌어 그들의 정한을 표현하였습니다.

당나라 이백의 채련곡은 너무 유명해 아직까지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시의 제목을 <연밥따는 아가씨>라고 붙인것도 그러한 연유때문입니다.

중국강남에서는 아가씨들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연밥을 주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 신분이 뚜렷한 사회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는 쉽지 않았을 겁니다.  초가을 맑은 하늘이 호수에 비쳐 파아란 구슬처럼 영롱할 때 너른 연잎 사이로 꽃이 우거진 곳에 혼자서 타는 작은 쪽딱배(목란배)를 매어두고 님을 기다리는 아가씨. 그녀는 막상 호수 저쪽에 그리워하는 님이 보이지만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하고 사랑의 정표인 연밥만 따서 슬쩍 던져두고는 달아납니다. 혹시 남이 그걸 보았을까 혼자서 반나절 동안 붉은 볼로 부끄러워한다는 마지막 구에서 그 아가씨의 심정이 잘 드러납니다.  조선 시대 사랑을 고백한 뒤 부끄러워하는 아가씨의 수줍음과 서정적 자아의 환희를 감칠맛나게 드러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시의 작자인 허 초희는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불운의 여성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당시에도 현모양처의 대표감으로는 신사임당, 사랑받는 애인의 대표감으로는 황진이가 꼽혔다고 합니다. 그러나 허 초희는 신분이 뚜렷한 조선이라는 숨막히는 나라에서 여자로 태어났고, 더구나 바람둥이 김성립의 아내로서 살아야 했으며, 두 아이마져 잃어버린 한많은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한이 이 시로 승화된 것은 아닐까요. 이 시는 초희의 남동생인 허균이 수집해서 간행한 《난설헌집》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허난설헌 (許蘭雪軒 1563∼1589(명종 18∼선조 22)) 에 대해서.....


조선 중기 시인. 자는 경번(景樊), 호는 난설헌. 본관은 양천(陽川). 본명은 초희(楚姬).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이이며 짧고도 불행한 일생을 보냈지만 우리나라 여성사를 빛낸 대표적인 천재 여류시인이었다.

허난설헌(1563∼1589)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었다. 첫째, 이 넓은 세상에서 왜 하필이면 조선에 태어났을까? 둘째, 왜 하필 여자로 태어나서 아이를 갖지 못하는 서러움을 지니게 되었을까? 셋째, 수많은 남자 중에서 왜 김성립(金誠立)의 아내가 되었을까? 

이 세 가지 한은 “왜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났을까”란 말로 압축할 수 있다. 동인(東人) 영수 허엽(許曄:1517∼1580)의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8세에 ‘백옥루상량문’(白玉樓上樑文)을 지어 신동으로 불릴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삼종지도의 나라’ 조선에서 여성의 재능은 불필요한 혹일 따름이었다. 그녀는 오빠 허봉(許封)의 주선으로 삼당시인(三唐詩人) 이달(李達)에게 글을 배웠다. 여성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던 당시에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행복한 유년시절은 결혼과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조혼 풍습에 따른 14세의 결혼은 불행한 미래에의 초대장이었다. 남편 김성립(金誠立)은 집을 떠나 과거공부에 전념했는데, 그런 시절의 일화가 전한다. 함께 과거공부를 하던 친구가 “성립이 기생집에서 놀고 있다”는 말을 지어내자, 여종이 이를 난설헌에게 말했다. 그녀는 도리어 술과 안주를 마련해 “낭군께선 이렇게 다른 마음 없으신데/같이 공부하는 이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간질을 시키는가”라는 시와 함께 보냈다. ‘상촌집’(象村集) 작자 신흠은 이를 보고 “허씨는 시에도 능하고, 기질도 호방함을 알게 되었다”고 평했다. 그러나 조선여성에게 호방한 기질은 불행의 씨앗일 뿐이었다. 그녀는 시를 통해 부부관계를 한 차원 높게 승화시키려 했으나 이 또한 비난의 대상이 됐다. ‘강남에서 독서하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寄其夫江含讀書)란 시에서 “규방에서 기다리는 마음 아프기만 한데/풀이 푸르러도 강남 가신 님은 오시질 않네”라고 노래하고, 시 ‘연꽃을 따며’(采蓮曲)에선 “물 건너 님을 만나 연꽃 따 던지고/행여 누가 봤을까 한나절 얼굴 붉혔네”라고 남편에 대한 수줍은 애정을 노래했다. 하지만 훗날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이 두 작품은 그 뜻이 음탕한 데 가까우므로 시집에 싣지 않았다”고 평했다. 사부곡(思夫曲)까지 음탕으로 몰아부치는 조선에서 여성의 모든 적극성은 비난받았다. 게다가 과거에 거듭 낙방한 김성립은 기방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허난설헌은 이런 왜곡된 현실과 맞서기 위해 시를 무기로 선택했다. 난설헌은 “누가 술 취해 말 위에 탔는가/흰 모자 거꾸로 쓰고 비껴 탄 그 꼴”이라는 ‘색주가의 방탕한 사람에 대한 노래’(大堤曲)’로 남편을 풍자했다. 그녀는 여성이 남성을 위해 존재하는 부차적 존재가 된 것이 문제의 근원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생의 운명이란 엷고 두터움 있는데/남을 즐겁게 하려니 이 내 몸이 적막하네”라고 읊은 시 ‘한정(恨情)’은 그런 인식의 표현이다. 그녀가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시어머니에게 미움 받은 그녀가 의지할 곳은 두 아이뿐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에게 비극이 잇달았다. “지난해는 사랑하는 딸을 잃더니/올해는 사랑하는 아들 잃었네/슬프고 슬프구나 광릉(廣陵:아이들 묻힌 곳) 땅이여/두 무덤 마주보고 서 있구나”(자식을 애곡함·哭子)라는 시는 불행이 거듭되는 운명에 대한 통곡이었다. 그녀는 시로써 조선의 사대부를 조롱하고 모순된 사회에 저항했다. 또한 여성에 대한 억압과 빈자에 대한 불평등을 동일시하는 강한 개혁지향성을 드러냈다. “양반댁의 세도가 불길처럼 성하던 날/고루(高樓)에선 노래 소리 울렸지만/가난한 백성들은 헐벗고 굶주려/주린 배를 안고 오두막에 쓰러졌네”(느낌을 노래함·感遇)란 시는 가난한 백성들의 질곡에 대한 분노였다. “밤새도록 쉬지 않고 베를 짜는데/뉘집 아씨 시집갈 때 옷감 되려나/손으로 싹둑싹둑 가위질하면/추운 밤 열 손가락 곱아오는데/남 위해 시집갈 옷 짜고 있건만/자기는 해마다 홀로 산다네.” 시 ‘가난한 여인을 읊음’(貧女吟)’은 노동자가 노동의 결과물에서 소외된다는 마르크스의 소외론이 나오기 300여년 전에 시인의 직관으로 간파한 완벽한 소외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를 통한 현실 변혁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녀의 분노는 시로 쓰여지는 것 이상의 영향을 끼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시는 현실을 넘어 피안의 세계로 다가간다. 도교의 세계였다. 장시 ‘신선이 노니는 노래’(遊仙詞)나 ‘꿈에서 광상산에서 시를 지으며 노닌 이야기’ 등이 그런 글들이다.

그녀가 남긴 시들이 허균에 의해 ‘난설헌집’(蘭雪軒集)으로 간행되고,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에 의해 중국에서 출간되면서 “이 넓은 세상에서 왜 하필이면 조선에 태어났을까”란 첫 번째 한은 풀렸다. 훗날 연암 박지원이 ‘열하일기’에서 “규중 부인으로서 시를 읊는 것은 애초부터 아름다운 일은 아니지만, 외국(조선)의 한 여자로서 꽃다운 이름이 중국에까지 전파되었으니 가히 영예스럽다고 이르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대(事大)의 나라 조선의 남성들은 명나라를 통해 역수입된 그녀의 명성을 거부할 수 없었다. 1711년에는 분다이야(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시집이 간행됐다. 그녀가 남긴 시들은 여성 차별의 왕국, 조선의 영역을 넘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것은 모순으로 가득찬 사회에 대한 그녀의 승리이기도 했다.

 

채련곡 ( 採蓮曲 )-당나라 이백
題意

蓮꽃이 피었을 무렵 배를 띄우고 美女를 태워 꽃을 따면서 놀적에 읊은 노래다.

若耶溪傍採蓮女...... 약야계방채련여
若耶溪 변두리서 蓮 따는 處女

笑隔荷花共人語 ...... 소격하화공인어
얼굴에 웃음 띄고 蓮꽃을 隔해 옆사람과 속삭인다

日照新粧水底明...... 일조신장수저명
해는 새로 丹粧한 고운 얼굴을 물에까지 비쳐 환히 어리고

風飄香袖空中擧...... 풍표향수공중거
바람은 香氣로운 소매를 空中으로 드날린다

岸上誰家遊冶郞 ...... 안상수가유야랑
기슭 위의 通路에는 누구집 遊冶郞들인가 ?

三三五五映垂楊 ...... 삼삼오오영수양
三三五五 수양버들 사이로 그림자가 어른 거린다

紫류嘶入落花去 ...... 자류시입낙화거
그들을 태운 紫류馬는 소리쳐 울면서 落花속을 달려가고
* 류= 馬 변에 留를 합친 글자

見此躊躇空斷腸 ...... 견차주저공단장
이를 보는 處女의 心情은 蓮꽃을 손에 쥐고 싱숭생숭.

* ( 이를 바라보는 處女는 공연히 마음이 躊躇(주저)스러워지면서 哀愁에 잠긴다 )

주해:

* 若耶溪 = 西施가 蓮을 땄다고 하는 浙江省에 있는 地名 ...... 遊冶郞(유야랑) = 놀고 다니는 風流 男 ...... 嘶(시)= 울...紫(자류) = 자주 빛이 나는 赤馬로서 검은 갈기가 있는 말

감상

이 詩篇은 勝景을 描寫한 것이 特色이라 하겠다. 前半에는 蓮을 따는 處女의 아름다운 姿態가 밝고 깨끗하게 드러났다. 後半의 辭句는 遊冶郞이 處女를 誘惑하듯 기슭 위의 通路를 지나가는 모습을 描寫하여 이런 華麗한 風景 속에서 處女의 가슴에 깃드는 哀愁를 노래 불렀다. 眞實로 짧은 句에, 豊富한 情操를 실어 놓은 佳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