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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谷幽蘭

solpee 2008. 8. 15. 22:18

 

知-好-樂의 단계


孔子는  “論語”,  ‘雍也’편에서 사람을 ‘아는 자’와 ‘좋아하는 자’ 그리고 ‘즐기는 자’의 세 그룹으로 나

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는 자’를 가장 아랫자리에 두고 ‘즐기는 자’를 제일 높은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

<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


즐긴다는 것은 요즘 젊은이들만의 특권이라고 알고 있는 우리들에게는 의외로 느껴질 것입니다.


論語의 첫 장에 나오는 ‘學而’편에서는 ‘배움’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은 곧 배워야만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學以時習之 不亦說好?

  有朋自遠方來 不亦樂好?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好?

<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면 그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온다면 그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섭섭하지 않는다면 그 어찌 군자라 하지 않겠는가? >


그런데 論語를 모르는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글귀인데도 자세히 읽어보면 웬 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듯합니다.

배우는 기쁨을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먼데서 친구가 찾아오는 이야기를 하고,  또 그 것이 군자를 언급

하는 것으로 비약을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孔子는 여기에서 배움의 의미를 고도로 壓縮시켜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해하려면 孔子의 生涯에 터닝포인트가 된 空谷幽蘭에서 살펴봐야 됩니다.

잘 알다시피 공자는 30년 가까이 天下를 周遊하면서 72명의 제후들을 만나 王道政治의 理念을  說破합니다.

하지만 覇道政治의 무력이 지배하던 戰國時代에 文德으로 다스리는 文人政治와 王道政治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 패러다임을 바꾸는데 실패한 孔子는  노나라로 향하던 중  인적이 없는 골짜기에서 蘭草와 만나게 됩니다.

아무도 보아줄 사람이 없는 空谷에서 홀로 핀 幽蘭의 그윽한 香氣를 맡으며 孔子는  깊이 歎息을 합니다.

雜草 속에 묻힌 애처로운 蘭草의 모습에서 자신의 처지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孔子는 곧 그 빈 골짜기의 蘭草처럼 남이 알아주든 말든 高潔한 향기를 가꾸며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하고 , 그 뜻을 시로 읊고 “倚蘭操”라는 거문고 노래를 만들었습니다.

孔子는 그날부터 都城을 향하려던 뜻을 접고 조용히 鄕里에 숨어 學問을 즐기고 文德을 쌓았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자신이 찾아다니지 않아도 먼 데서 많은 賢者들이 그를 찾아오게 됩니다.

그래서 孔子의 弟子가 삼천 명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論語 첫머리에 나오는 배움의 기쁨이며, 

먼데서 자신을 찾아오는  선비들을 맞이하는 즐거움이며,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더라도 스스로 골짜기의 난초처럼

自足할 줄 아는 君子의 마음일 것입니다.


우리는 孔子에게서   “배우는 자의 기쁨과 선비의 즐거움,  그리고 君子의 마음이 강조되면서 

배움이 업그레이드되는 過程"을 배우게 됩니다.

이와 같이 배움이 성숙단계에 이르면 자연히 사람들이 모여들게 되어  그들을 가르치고,  그 단계가

지나면 모든 단계에서 벗어나 自己完成 즉 君子의 경지로 들어가게 되어 남이 몰라 주어도 自足하면서 삶을 즐기게 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倚蘭操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길을 걸으면 생각이 난다.

 

마주보며 속삭이던 지난 날 얼굴들이

꽃잎처럼 펼쳐진다.

 

소중했던 많은 날들 빗물로 흘려 보내고

밀려오는 그리움을 돌아다 본다.

가득찬 눈물 너머로...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