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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겨 죽는 개구리 증후군(Boiling Frog Syndrome)

solpee 2008. 6. 15. 09:55
우리는 지금 "삶겨 죽는 개구리 증후군" 을 앓고 있지는 않을까....?

우리들은 혹시 삶아지는 개구리처럼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삶겨 죽는 개구리 증후군(Boiling frog syndrome)!

위의 영어를 해석해 보면, "Boiling...삶아지고 있는" 이런 뜻의 현재진행형인 것 같은데요?

이미 삶은 개구리가 아닌 "삶아지고 있는 개구리"가 아닐까...생각합니다.

 

아뭏튼 "삶겨 죽는 개구리 증후군" 이란 무엇인지 한 번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미국 코넬대학교의 실험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개구리 한 마리를 차가운 물이 담긴 비이커에 넣었습니다.

비이커 밑에는 분젠등을 놓고 1초에 화씨 0.017도씩 물이 데워지도록 불꽃을 아주 작게 해 놓았습니다.

온도가 서서히 높아지기 때문에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당장이라도 비이커에서 뛰어 올라 안전한 곳으로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구리는 태평스럽게 앉아 있었습니다.

온도는 0.017씩 올라가는데 개구리는 여전히 비이커 속에서 빠져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두 시간 반쯤 지난 뒤 개구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개구리는 뜨거운 물에 푹 삶아져서 죽어 있었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죽은 것입니다.

자기가 죽어가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다가 그대로 삶아진 것입니다.

 

 

  

 

 

 

[짚고 넘어가기]

 

우리는 지금 "삶은 개구리 증후군" 을 앓고 있지는 않을까....?

 

위의 실험에서 처럼,

찬물이 들어 있는 비이커 안(위쪽은 개방하여 도망갈 수 있게 했음)에 개구리 한 마리를 넣고,

비커 밑에 알콜 램프에 불을 붙여, 서서히 가열하면서 개구리의 반응을 살펴 본 것인데,

처음에 찬물 속으로 들어간 개구리는 주변을 살피더니, 헤엄을 치며 놀기시작했다. 그렇게 개구리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즐기는 사이에, 램프의 열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하지만 개구리는 점 점 따뜻해지는 수온을 오히려 즐기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 녀석은 조금도 동요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개구리는 뭔가 이상하다 는 느낌이 들었는지, 갑자기 몸의 동작이 빨라지면서 비커를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다했지만,

이미 때가 늦었던 것이다.

개구리가 빠져 나오기에는 비이커안의 물이 너무 뜨거워져 있었고, 결국 개구리는 그 안에서 삶아지고 말았 던 것이다.

이것이 소위 '
삶아진 개구리 증후군(Boiled frog syndrome)" 이다.

마찬가지로,
변화라고 하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엄청난 규모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변화는 거의 모두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매우 서서히 다가 온다.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커 안의 개구리처럼 변화가 일 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는 것이 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변화가 도래했음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경우가 많다. 그러한 상황에서
변화는 이미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 는 것
이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변화의 실체를 미리 감지하지 못한 사람은, 삶아진 개구리처럼 안타까운 신세가 되지는 않을지 서로가 각자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강조하는 바이다.

 

아니 철저히 깨쳐서 준비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다.

知天下之勢者 有天下之生氣, 暗天下之勢者 有天下之死氣.

천하의 대세를 아는 자, 천하에 살아 남을 수 있고,

천하의 대세를 모르는 자, 천하에 살아 남을 수 없다.

 

마르크스.레닌의 赤化戰略에도 "개구리 삶기"가 있다.

한국의 좌파들이 미선이의 촛불을, 소고기 수입반대의 촛불을 반미로, 반정부로,반한국으로 승화시켜 종북으로, 김정일의 위성국으로 가는 혁명을 획책하고 있음에도 지금 우리들은 아니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종북주의자들에 의해 삶기고 있으면서 스스로를 삶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한 시라도 빨리 이를 깨달아 좌파들의 삶기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