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治天九條

solpee 2008. 4. 30. 15:20

○辛丑朔/刑曹參議李象靖縣道上疏:

其一曰立志。 志者。 心之所之, 氣之帥, 而事之榦也。 有其志, 而後能成其事, 故古之論學, 必以立志爲先。 程子曰: “言學, 便以道爲志;言人, 便以聖爲志。” 此君子立志之準的也。 人君居崇高之位, 應事物之煩, 自足吾治, 而不肯留意於進取, 眩於機務, 而不能深究於義理, 號令由己, 則有威武獨斷之心, 至治難成, 則有架漏度日之思。 此後世中主之所不免也。 顔淵曰: “何人也? 予何人也? 有爲者亦若是。” 苟能激勵奮發, 以如爲志, 而孜孜不已焉, 是亦而已矣。 雖然, 之所以爲, 亦有道焉。 濬哲、溫恭之德, 精一執中之學, 好問察邇之智, 與夫任官齊政、好生恤刑之道, 見於經傳者, 俱有成法, 惟患人君, 無其志耳。 惟聖明留意焉。 其二曰明理。 理者, 事物當然之則也。 凡盈於兩間者, 皆物也, 而莫不有當然之理。 在人, 則心之爲物, 實主於身, 涵萬善而統萬化, 貫動靜而該本末。 具於身, 而爲視聽言動之則, 《大學》之格致、《中庸》之明善, 皆所以開示明理之工, 而讀書爲急務, 諸書之中, 莫先於四子。 次及於諸經, 以博其義理之趣, 旁通乎史傳, 以考其得失之跡, 而以之緖言, 爲之引路證明, 則門戶正當, 路徑端的, 而異言、邪說, 不足以亂吾之知思矣。 帝王之學, 與經生章句之習, 有異。 然竊以講學明理之功, 宜無有不同者, 故敢以是獻焉。 惟聖明, 留意焉。 其三曰居敬。 敬者, 悚然如有所畏之名, 一心之主宰, 而萬事之綱領也。 人主一身, 萬機所係, 聲色玩物之欲, 便嬖巧侫之奸, 更攻迭鑽, 以惑亂其知思者, 日不知其幾。 則所以檢防維持之道, 必有百倍於閒居匹處之士也。 三代之敎, 自小學以敬涵養德性, 以立其基本。 及其入于大學, 則又終之以敬, 開發聰明, 進德修業, 以收小學之成功。 是蓋未嘗一日, 而離乎敬也。 其持敬之功, 則程子謝氏尹氏之說, 朱子旣採, 而載之《大學或問》之書, 以示動靜表裏之工。 孔子曰: “修已以敬, 以安百姓。” 子思曰: “篤恭而天下平。” 敬之爲用, 顧不大哉? 然敬之爲工, 拘束則迫切, 而難久徐緩則解弛, 而易失。 厭動耽靜, 則近坐襌入定之虛, 計工急效, 則有欲速助長之患。 積久功至, 居安資深, 自然光大而高明矣。 《詩》曰: “於! 緝熙敬止。” 惟聖明留意焉。 其四曰體天。 天者, 道而已, 中正純粹者, 天之道也。 《易》曰: “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 此君子體天之功也。 殿下聖質明睿, 勵精圖治, 豈有一毫怠忽之漸? 然人心難保, 氣習易移。 雖以大之聖, 而以怠荒戒, 皐陶以逸欲戒, 以慢遊傲虐戒, 大不以己之聖而怫其言, 群臣不以君之聖, 而忽其戒, 則君安得不益聖, 而國安得不益治? 惟聖明體念焉。 其五曰納諫。 諫所以攻己闕而來天下之善者也。 《商書》曰: “木從繩則直, 后從諫則聖。” 蓋人君, 以一身而總萬機, 處九重而應四遠, 知識有未達, 思慮有未周, 應酬或易差, 不有忠直之士, 隨事規諫, 獻替可否, 何以審幾微燭, 幽遠而處之, 皆合於道乎? 古之治天下, 立師傅之職, 設諫諍之官, 前有疑後有丞, 左有輔右有弼, 在輿有旅貫之規。 位宁有官師之典, 倚几有訓誦之諫, 居寢有瞽御之箴, 臨事有瞽史之導, 宴居有工師之誦, 蓋立乎朝, 而執事於人主之前者, 莫非諫臣也。 噫! 忠言讜論, 雖若逆耳, 而實利於國, 諛辭侫言, 雖若遜志, 而必害於君。 試以歷代之明君、庸主而觀之, 則其得失、善敗, 可鏡考矣。 殿下聖質聰睿, 摠攬權綱, 受納讜言, 無所忤逆。 然私憂過計, 不能無危, 明主之慮, 敢冒死而有獻。 惟聖明, 澄察焉。 其六曰興學。 學也者, 學成人之道也。 玉不琢, 不足以成美器。 人不學, 不可以成賢才。 昔周宣榦有言: “國家若欲回復中原, 須罷三十年科擧始得。” 朱子, 稱其爲名言。 今若盡罷科法, 而復於古, 如明道熙寧之議, 則固爲盡善全美, 而不可以驟變, 則酌古參今, 略倣朱子貢擧之議, 而加損益焉。 專務實功, 絶去浮文, 重道義而後詞藝, 尙敦樸而賤華靡, 革僥倖趨競之習, 熄浮夸儇巧之弊, 則人心士趨, 不覺其變移, 而自底於成矣。 惟聖明垂察焉。 其七曰用人。 斯人也, 人主所與共天職者也。 夫以四海之廣, 兆民之衆, 庶務之緊, 非一人之聰明智慮, 所可周知而獨運。 是以, 設官分職, 隨其才器之大小, 而委任責成, 然後可以咸熙庶績, 而無尸位曠官之弊矣。 朱子有言曰: “人君只要辨一片心、一雙眼。 眼明則能識得賢不肖, 心公則能進退賢不肖。 明與公, 卽用人之二字符也。” 孔子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蓋枉直殊塗, 無交和幷容之理。 如賞廉而不退貪, 則廉者懷恥。 進忠而不遠侫, 則忠者屛跡。 好惡拂性, 認貪侫爲忠廉, 則是非顚倒, 用舍乖錯, 而國之不底亂亡者, 幾希。 孟子曰: “無仁賢則國空虛。” 惟聖明留意焉。 其八曰愛民。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旣爲其父母, 視之烏得不如子哉? 夫人君享南面之樂, 專富貴之奉, 而不知生民之休戚, 則厚賦重斂, 以浚其膏血。 嚴刑峻罰, 以剝其肢體, 民且索然求死, 囂然思亂, 雖欲使親上死長, 其可得乎? 民之品有四, 而惟農爲本, 爲業甚苦。 暑雨祈寒之怨咨, 露體塗足之辛苦, 固已艱難, 而及其秋成, 公私債負, 左右催督, 往往不免於桁楊箠楚之厄。 賣牛鬻鼎, 幸免其禍, 扶幼携老, 轉於溝壑者, 殆不可勝計。 殿下愛民育物之意, 發於至誠, 愼刑薄斂之旨, 不啻十行, 而生民之困猶未紓, 催科之督猶未除, 此其故何也? 孟子曰: “先王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惟聖明留意焉。 其九曰尙儉。 《易》曰: “節以制度, 不傷財不害民。” 古語曰: “奢侈之害, 甚於天災。” 誠至切之言也。 蓋人主能約己而澤物, 則身安而體舒, 人悅而天佑。 然則其崇侈之害民者, 必獲譴於天, 可反隅而得矣。 伏願殿下, 克己節欲, 尙儉戒奢, 法天地之節, 省用度之費, 而上自朝廷, 下至閭井, 莫不使之去侈華, 而崇節儉, 一變風習, 回淳反朴, 則邦本固而天心豫, 壽福長而國運昌矣。 惟聖明留意焉。 右九條者, 皆修德養心之要, 出治行政之本。 雖平常易近, 無新奇斬絶之論, 然聖學之本統, 王政之綱領。 惟殿下, 勿以爲卑近而不足爲, 勿以爲迂闊而不必爲。 先以立志爲本, 以明理居敬, 爲用工之準的, 使道義昭著, 而主宰分明, 剛健而不已, 誠實而無間, 則之聖, 不離乎平常易近, 而實有高深遠大而不可禦者矣。 納諫者, 所以補闕拾遺, 以進吾之德, 而興學用人, 愛民尙儉者, 方是見於施措運用。 然亦但論其所存, 而未及乎政令、科條之詳。 夫本末具而綱目備, 然後方可以言治。 苟得其要領, 則節目條劃, 特一有司之事耳。 臣疾病閒散, 無所見聞, 無以識其古今之宜, 施措之術, 不敢備例塞責, 瀆擾聖聰, 而獨於所謂本與綱者, 拳拳焉。

批曰: “九條萬言, 言言眞切。 庸替座右之銘, 要作觀省之資, 而卽此一疏, 可想爾文識。 俟少間上來察職。”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1장 A면

【영인본】 45책 250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윤리(倫理) / *인사-관리(管理)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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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조 참의 이상정(李象靖)이 현도(縣道)를 통하여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

“첫째는 입지(立志)입니다. 뜻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목표를 정하여 나아가는 것이고 기(氣)를 통솔하는 것으로, 일의 근간(根幹)이 되는 것입니다. 그 뜻이 있은 연후에야 그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옛날 학문을 논함에 있어 반드시 입지를 우선으로 삼았습니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 학문에 대해서 말할 적에는 곧 도(道)를 행하는 것으로 뜻을 삼아야 하고 사람에 대해서 말할 적에는 곧 성(聖)에 도달하는 것으로 뜻을 삼아야 한다.’고 하였는데, 이는 군자(君子)가 뜻을 세우는 준적(準的)인 것입니다. 임금이 높은 지위에 앉아서 번다한 사물(事物)에 대응함에 있어 스스로 자신의 정치에 만족을 느껴 진취(進取)에 유념하려 하지 않고 기무(機務)에 현혹되어 의리(義理)를 깊이 궁구하지 못하며, 호령(號令)이 자신을 경유할 경우에는 위무(威武)를 부려 독단(獨斷)할 마음을 지니고 지치(至治)를 이루기 어려울 경우에는 그럭저럭 시일이나 보내려는 생각을 지니는 것은, 이야말로 후세의 중주(中主)로서는 면치 못하는 것입니다. 안연(顔淵)2786) 이 말하기를, ‘ 순(舜)은 어떤 사람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 노력하는 사람은 또한 그렇게 되는 것이다.’ 하였는데, 진실로 격려하고 분발하여 처럼 되겠다는 뜻을 세우고 부지런히 힘써 중단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순(舜) 같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기는 하지만 답게 된 이유는 또한 도(道)를 지녔기 때문인 것입니다. 준철(濬哲)하고 온공(溫恭)한 덕(德), 정일(精一)하고 집중(執中)하는 학문, 묻기를 좋아하고 통속적인 말을 살피기 좋아하는 지혜, 임관(任官)·제정(齊政)·호생(好生)·휼형(恤刑)에 대한 도(道)가 경전(經傳)에 드러난 것이 모두 성법(成法)이 되어 있는데, 오직 걱정스러운 것은 임금이 뜻을 두지 않는 것뿐입니다. 오직 성명(聖明)께서는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이치를 밝히는 것입니다. 이치는 사물(事物)의 당연한 법칙인 것입니다. 대저 천지 사이에 가득찬 것이 모두가 물(物)인 것인데, 거기에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이치가 있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사람의 경우에는 마음이 물이 되는데, 이것이 실로 일신의 주인이 되는 것으로 만선(萬善)을 지니고서 만화(萬化)를 통제하며 동정(動靜)에 일관되어 있고 본말을 겸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신에 갖추어져 있어 시청(視聽)과 언동(言動)의 준칙이 되고 있는데, 《대학(大學)》의 격치(格致)와 《중용(中庸)》명선(明善)은 모두가 이치를 밝히는 공부를 열어 보인 것입니다. 따라서 독서(讀書)가 급선무인데, 여러 책들 가운데 사자(四子)2787) 보다 더 먼저 할 것이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여러 경전(經傳)을 읽어 의리의 취향을 넓히고 사전(史傳)을 널리 통달하여 그 득실의 자취를 상고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염(濂)·락(洛)·관(關)·민(閩)2788) 의 서언(緖言)을 길을 인도하는 증명으로 삼는다면, 문호(門戶)가 정당하고 노경(路徑)이 단정하여 이언(異言)과 사설(邪說)이 나의 지사(知思)를 혼란시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제왕(帝王)의 학문은 경생(經生)들이 장구(章句)를 익히는 것과는 다른 점이 있는 것입니다만, 그러나 삼가 학문을 강론하여 이치를 밝히는 공부임에는 의당 같지 않은 점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감히 이 말을 올리는 것이니, 오직 성명께서는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는 거경(居敬)입니다. 경(敬)이라고 하는 것은 송연(悚然)히 두려워하는 것 같은 것이 있는 데 대한 명칭인 것으로, 한 마음의 주재(主宰)요 만사(萬事)의 강령(綱領)인 것입니다. 임금의 한 몸은 만기(萬機)가 걸려 있는 것이므로 성색(聲色)과 완물(玩物)에 대한 욕심, 편폐(便嬖)와 교녕(巧佞)스런 간사함이 교대로 공격하여 와서 지사(知思)를 현혹하고 혼란시키는 것이 하루에도 몇 번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막고 지사를 유지시켜 감에 있어서는 반드시 한가히 혼자서 거처하는 선비보다는 백 배의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삼대(三代)2789) 때의 교육은 소학(小學) 때부터 경(敬)에 의거하여 덕성(德性)을 함양케 함으로써 기본(基本)을 확립시키는데, 대학(大學)에 들어가기에 이르러서는 또 경(敬)으로 끝막음하여 총명(聰明)을 개발하고 덕업(德業)을 연마하게 함으로써 소학의 성공을 거두어 들이게 합니다. 이렇게 하루도 경에서 떠나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경을 지속시키는 공부에 대해서는 정자(程子)·사씨(謝氏)·윤씨(尹氏)의 논설을 주자(朱子)가 이미 채집하여 《대학혹문(大學或問)》에 기재함으로써 동정(動靜)과 표리(表裏)에 관한 공부를 보였습니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 경(敬)으로 자신의 행동을 연마하여 백성들을 편안하게 한다.’ 하였고, 자사(子思)는 말하기를, ‘ 공경을 돈독히 하면 천하가 태평하여진다.’ 하였으니, 경의 효용이 위대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경에 관한 공부는 구속(拘束)하면 마음이 박절(迫切)하여져 오래도록 견지하기가 어렵고 완만하게 하면 마음이 해이해져서 잃기가 쉬우며, 동(動)을 싫어하고 정(靜)을 탐하면 좌선(坐禪)하여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가는 헛됨에 가깝게 되고 공교로운 계교를 세워 공효를 얻는 것에 급급하게 되면 빨리 성취하려 하고 억지로 자라는 것을 돕는 걱정이 있게 됩니다. 오래도록 연마하여 공부가 지극해져서 그것이 부담없이 자연스러워져 도움받는 것이 깊게 되면 자연히 광대(光大)하고 고명(高明)하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시전(詩傳)》에 이르기를, ‘ 아! 끊임없이 환히 밝혀 경(敬)에 머문다.’고 하였으니, 오직 성명(聖明)께서는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넷째는 하늘을 몸받는 것입니다. 하늘은 그것이 바로 도(道)인데, 중정(中正)하고 순수(純粹)한 것이 하늘의 도인 것입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 하늘의 운행은 꾸준한 것이므로 군자(君子)가 이를 본받아 쉬지 않고 스스로 노력한다’고 했으니, 이는 군자가 하늘을 몸받는 공부인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성질(聖質)이 명예(名睿)하시어 정신을 가다듬어 잘 다스려지기를 도모하고 있으니, 어찌 일호인들 태만하거나 소홀히 하는 조짐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잘 보존시키기가 어려운 것이어서 기습(氣習)에 따라 옮겨지기 쉬운 것입니다. 비록 대순(大舜) 같은 성인(聖人)으로서도 익(益)이 태황(怠荒)으로 진계(陳戒)하였고 고요(皐陶)는 일욕(逸欲)으로 진계하였고 우(禹)는 만유(慢遊)와 오학(傲虐)으로 진계하였습니다만, 대순(大舜)은 자신이 이미 성인이라는 것으로 그 말을 고깝게 여기지 않았으며 뭇 신하들은 임금이 성인이라는 것으로 그 진계하는 것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니, 임금이 어떻게 더욱 성스럽게 되지 않을 수 있겠으며 나라가 어떻게 더욱 잘 다스려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성명께서는 깊이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는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간언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다스리고 천하의 선한 말을 나오게 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상서(商書)》에 이르기를, ‘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임금은 간언을 따르면 성스러워진다.’ 하였습니다. 대저 임금은 한몸으로 만기(萬機)를 총괄하고 구중 궁궐에 있으면서 먼 사방의 일을 대응함에 있어 아는 것이 통달되지 못하는 점이 있고 사려(思慮)가 두루 미치지 못한 점이 있어 응수(應酬)할 적에 간혹 차질을 일으키기 쉬운 것이니, 충직(忠直)한 선비들이 일에 따라 규간(規諫)하여 헌가 체부(獻可替否)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은미한 기미를 상세히 살피고 먼 곳의 일을 밝게 알아서 조처하는 것이 모두 도(道)에 맞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 사부(師傅)의 직책을 만들고 간쟁(諫諍)하는 관원을 설치하여, 앞에는 의(疑), 뒤에는 승(丞)이 있고 왼쪽에는 보(輔), 오른쪽에는 필(弼)이 있으며 수레에는 여분(旅賁)의 규계(規戒)가 있고 위저(位宁)에는 관사(官師)의 법전이 있고 의궤(倚几)에는 훈송(訓誦)의 간언이 있고 거침(居寢)에는 지어(贄御)의 잠언(箴言)이 있고 일에 임하여는 고사(瞽史)의 인도함이 있고 연거(宴居)에는 공사(工師)의 송주(誦奏)가 있으니, 대개 조정에 벼슬하여 임금 앞에서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간신(諫臣)인 것입니다. 아! 충성스런 말과 옳은 논의는 그것이 귀에 거스르는 것 같지만 실상은 나라에 이로운 것이고 듣기 좋은 아첨하는 말은 그것이 마음을 거스르지 않는 것 같지만 반드시 임금을 해치게 됩니다. 시험삼아 역대(歷代)의 현명한 임금과 용렬한 임금을 가지고 살펴보면, 잘잘못과 선불선(善不善)을 거울처럼 환히 고증할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성질(聖質)이 총명하고 슬기로우시어 권강(權綱)을 총람(摠攬)하시고 옳은 말을 받아들임에 있어 귀와 마음에 거스르시는 것이 없으십니다. 그러나 신의 사사로운 걱정과 지나친 계려(計慮)에 있어 명주(明主)를 위태롭게 여기는 우려가 없을 수 없으므로 감히 죽음을 무릅쓰고 진달하는 것이니, 오직 성명께서는 밝게 살피소서.

여섯째는 학교(學校)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학교라고 하는 것은 가르쳐서 사람을 만드는 방법인 것입니다. 옥(玉)도 다듬지 않으면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 수 없고 사람은 가르치지 않으면 훌륭한 인재(人才)를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 송(宋)나라주선간(周宣榦)은 말하기를, ‘ 국가에서 중원(中原)을 회복시키려 한다면 반드시 30년 동안의 과거법(科擧法)을 파기시켜야 한다.’ 하였는데, 그리하고 나서 비로소 주자(朱子)를 얻었으니, 그의 말이 명언(名言)이 되기에 걸맞습니다. 이제도 과법(科法)을 모두 파기하고 옛법을 회복시키는 것을 명도(明道)2790) 희녕(熙寧)2791) 연간에 올린 주의(奏議)처럼 한다면 진실로 다 선하고 다 아름다운 것이 되겠습니다만, 갑자기 고칠 수는 없는 것이니, 옛날과 이제를 참작하여 대략 주자의 공거의(貢擧議)를 모방하되 손익(損益)를 가해야 됩니다. 그리하여 오로지 실공(實功)만을 힘쓰고 부문(浮文)을 제거하여 도의(道義)를 중히 여기고 사예(詞藝)를 뒤로 하며 돈박(敦朴)을 숭상하고 화미(華靡)를 천하게 여김으로써 요행을 바라고 다투어 달려나가는 습관을 고치고 실속이 없으면서 약삭빠르게 구는 간교한 폐단을 종식시킨다면, 인심과 선비들의 추향이 변이(變移)되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완성될 것이니, 오직 성명께서는 굽어살피시기 바랍니다.

일곱째는 인재를 기용하는 것입니다. 인재라고 하는 것은 임금이 그들과 함께 천직(天職)을 같이할 바의 대상인 것입니다. 대저 드넓은 사해(四海) 안에 많은 백성들이 있고 그로 하여 생겨나는 번다한 서무(庶務)를 한 사람의 총명과 지려(智慮)로 두루 알아서 혼자 운용(運用)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관직을 나누어 설치하여 놓고 재기(才器)의 대소(大小)에 따라 위임하여 완성을 책임지운 연후에야 모든 업적이 다 제대로 이루어져 자리만 지키면서 봉급만 타먹는 폐단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주자(朱子)가 말하기를, ‘ 임금은 단지 한조각 마음과 두 눈으로 판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안목이 현명하면 어진 이와 어질지 못한 이를 식별할 수 있고 마음이 공평하면 어진 이를 나오게 하고 어질지 못한 이를 물러가게 할 수 있으니, 현명함과 공평한 것은 곧 ‘ 인재를 기용한다[用人]’는 두 글자의 부신(符信)인 것이다.’ 하였고, 공자(孔子)는 말하기를, ‘ 정직한 사람을 기용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을 버리면 백성이 열복하고 정직하지 못한 사람을 기용하고 정직한 사람을 버리면 백성이 복종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정직하지 못한 것과 정직한 것은 길이 달라서 서로 섞여 함께 용납되는 이치가 없는 것입니다. 예컨대, 청렴한 사람을 상주면서 탐오한 자를 물리치지 않는다면 청렴한 사람이 수치스런 마음을 지니게 되고, 충성스런 사람을 기용하면서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다면 충성스런 사람이 자취를 감추게 되는 것입니다. 호오(好惡)를 본성(本性)에 어긋나게 하여 탐오하고 아첨하는 자들을 충성스럽고 청렴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시비(是非)가 전도되고 용사(用捨)가 어긋나서 나라가 난망(亂亡)하는 데 이르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 인현(仁賢)한 사람이 없으면 국가가 텅 빈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였으니, 오직 성명(聖明)께서는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여덟째는 백성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전(詩傳)》에 이르기를, ‘ 낙지 군자(樂只君子)2792) 여, 백성의 부모(父母)로다.’ 하였는데, 이미 부모가 되었으면 어떻게 백성을 아들처럼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저 임금이 남면(南面)의 즐거움을 누리면서 부귀(富貴)의 봉공(奉供)을 오로지한 채 백성의 휴척(休戚)을 모른다면, 세금을 무겁게 거두어들여 백성의 고혈(膏血)을 짜내게 되고 엄혹한 형벌을 가하여 지체(肢體)를 해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생기를 잃고 죽으려고 하고 떠들썩하게 원망하면서 난(亂)을 일으킬 것을 생각하게 된다면, 비록 그들로 하여금 윗사람을 친히 하고 웃어른을 위하여 사력(死力)을 바치게 하려 한들 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을 네 가지로 품별(品別)할 수 있는데 오직 농업(農業)이 근본이 됩니다만, 일을 하는 것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찌는 더위와 한추위에 대한 원망과 몸이 땀에 젖고 발이 흙에 빠지는 신고(辛苦)가 이미 견디기 어려운 고통인데, 가을에 수확하는 데 이르러서는 공사(公私)의 부채(負債)를 좌우에서 독촉하는가 하면 왕왕 형틀에 묶여 매를 맞는 횡액을 면치 못하기 일쑤입니다. 그리하여 소를 팔고 솥을 팔아서 그 화(禍)를 요행히 면하게 되는데, 그리고 나서는 어린애를 업고 노인을 이끌고서 떠돌다가 구렁텅이에 죽어서 나뒹구는 사람들을 이루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백성을 사랑하고 무육(撫育)하는 마음이 지성(至誠)에서 발출되었으므로 형벌을 신중히 하고 세금을 박하게 거두라는 내용의 윤음(綸音)을 10행으로 내렸을 뿐만이 아닙니다만, 백성의 곤고(困苦)스러움이 아직도 풀리지 않고 세금을 다그치는 독촉이 아직도 없어지지 않고 있으니, 이것이 무슨 까닭입니까? 맹자가 말하기를, ‘ 선왕(先王)은 남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차마 못하는 그런 정치를 시행하였다.’고 했으니, 오직 성명께서는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아홉째는 검소를 숭상하는 것입니다. 《역경(易經)》에 이르기를, ‘ 절제에 의거 법도를 만들어서 재화(財貨)를 낭비하지 않으며 백성을 해치지도 않는다.’ 하였고, 옛말에도 ‘ 사치로 인한 폐해가 천재(天災)보다도 더 심하다.’고 했으니, 참으로 지극하고도 간절한 말입니다. 대저 임금이 자신에게 검약(儉約)하게 하여 백성을 윤택하게 만든다면, 몸이 편안하고 여유가 있게 되는 것은 물론, 백성이 기뻐하고 하늘이 돕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치를 숭상하여 백성을 해치는 경우에는 반드시 하늘의 견책(譴責)을 받게 된다는 것은 미루어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사심(私心)을 극복하여 하고 싶은 것을 절약하며 검소를 숭상하고 사치를 경계시킴으로써 천지(天地)의 절제를 법받아 용도(用度)의 낭비를 줄여서, 위로 조정에서부터 아래로 여정(閭井)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치를 제거하고 절검을 숭상하게 함은 물론, 풍습(風習)을 일변시켜 순박(淳朴)한 것을 회복시킨다면, 방본(邦本)이 공고하여지고 천심(天心)이 기뻐하게 되어 수복(壽福)을 길이 누리고 국운(國運)이 창성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성명께서는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아홉 조항은 모두 덕을 연마하고 본심(本心)을 배양하는 요점이고 정치를 시행하는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비록 평상적인 것이고 천근한 것이어서 뛰어나게 신기한 논의는 없습니다만, 그러나 성학(聖學)의 본통(本統)이 되고 왕정(王政)의 강령(綱領)이 되는 것이니, 오직 전하께서는 내용이 비근(卑近)하다는 것으로 행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지 마시고 내용이 오활하다고 해서 행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지 마소서. 먼저 입지(立志)를 근본으로 삼고 이치를 밝히고 경(敬)을 지니는 것을 용공(用工)의 준적(準的)으로 삼아서, 도의(道義)를 환히 드러나게 하고 주재(主宰)를 분명하게 하여 강건(剛健)하게 계속 밀고 나아가고 간단(間斷)없이 성실하게 한다면, 요(堯)·순(舜) 같은 성스러움도 평상적인 천근한 일을 떠나지 않은 데서 온 것이니, 실로 높고 깊고 원대하여 정지시킬 수 없는 점이 있게 될 것입니다. 간언(諫言)을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여 덕을 증진시키는 방법인 것이요, 학교를 일으키고 인재를 기용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검소를 숭상하는 것은 바야흐로 시조(施措)와 운용(運用)에 드러나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런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만 논하였을 뿐, 정령(政令)과 과조(科條)에 대한 상세함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대저 본말(本末)이 구비되고 강목(綱目)이 갖추어진 연후에야 바야흐로 다스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요령(要領)을 파악하게 되면 절목(節目)과 조획(條劃)은 단지 일개 유사(有司)의 일일 뿐인 것입니다. 신은 병을 앓느라고 한산(閑散)한 처지에 있고 듣고 본 것도 없어서, 고금(古今)의 사의와 시조(施措)의 방법에 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감히 전례를 갖추고 제시하여 책임감 있게 성총(聖聰)을 번독스럽게 하지 못하고, 유독 이른바 근본과 강령에 대해서만 정성껏 진달합니다.”

하니, 비답(批答)하기를,

“아홉 조항의 많은 말들은 말마다 참되고 절실하였다. 이를 좌우명(座右銘)으로 바꾸어 놓고 보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으려 한다. 바로 이 하나의 상소는 그대의 문식(文識)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이다. 병이 조금 차도가 있기를 기다려 올라와서 직무를 수행토록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2책 12권 1장 A면

【영인본】 45책 250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윤리(倫理) / *인사-관리(管理)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