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肩輿歎

solpee 2008. 3. 16. 17:50

肩輿歎

           茶山 丁若鏞 

人知坐輿樂 사람들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不識肩輿苦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고 있네.
肩輿山峻阪 가마 메고 험한 산길 오를 때면,
捷若蹄山麌 빠르기가 산 타는 노루와 같고
肩輿不懸崿 가마 메고 비탈길 내려올 때면,
沛如歸笠羖 우리로 돌아가는 염소처럼 재빠르네.
肩輿超谽谺 가마 메고 깊은 골짜기 건너갈 때면,
松鼠行且舞 다람쥐도 덩달아 같이 춤추네.
側石微低肩 바위 옆을 지날 때에는 어깨 낮추고,
窄徑敏交服 오솔길 지날 때에는 종종걸음 걸어가네.
絶壁頫黝潭 검푸른 저수지 절벽에서 내려다볼 때는,
駭魄散不聚 놀라서 혼이 나가 아찔하기만 하네.
快走同履坦 평지를 밟듯이 날쌔게 달려
耳竅生風雨 귀에서 바람 소리 쌩쌩 난다네.
所以游此山 이 산에 유람하는 까닭인즉슨
此樂必先數 이 즐거움 맨 먼저 손꼽기 때문
紆回得官岾 근근히 관첩(官帖)을 얻어만 와도
役屬遵遺矩 역속(役屬)들은 법대로 모셔야 하는데
矧爾乘傳赴 하물며 말타고 행차하는 한림(翰林)에게
翰林疇敢侮 누가 감히 못 하겠다 거절하리오.
領吏操鞭扑 고을 아전은 채찍 들고 감독을 맡고,
首僧整編部 수승(首僧)은 격식 차려 맞을 준비하네.
迎候不差限 높은 분 영접에 기한을 어길쏘냐,
肅恭行接武 엄숙한 행렬이 끝없이 이어지네.
喘息雜湍瀑 가마꾼 숨소리 폭포 소리에 뒤섞이고
汙漿徹襤褸 해진 옷에 땀이 베어 속속들이 젖어 가네
度虧旁者落 외진 모퉁이 지날 때 옆엣놈 뒤처지고,
陟險前者傴 험한 곳 오를 때엔 앞엣놈 허리 숙여야 하네.
壓繩肩有瘢 밧줄에 눌리어 어깨에 자국 나고,
觸石趼未瘉 돌에 채여 부르튼 발 미쳐 낫지 못하네.
自痔以寧人 자기는 병들면서 남을 편케 해 주니,
職與驢馬伍 하는 일 당나귀와 다를 바 하나 없네.
爾我本同胞 너나 나나 본래는 똑같은 동포이고,
洪勻受乾父 한 하늘 부모삼아 다 같이 생겼는데,
汝愚甘此卑 너희들 어리석어 이런 천대 감수하니,
吾寧不愧憮 내 어찌 부끄럽고 안타깝지 않을쏘냐.
吾無德及汝 나의 덕이 너에게 미친 것 없었는데,
爾惠胡獨取 내 어찌 너의 은혜 혼자 받으리.
兄長不憐弟 형이 아우를 사랑치 않으니,
慈衰無乃怒 자애로운 어버이 노하지 않겠는가.
僧輩楢哿矣 중들은 그래도 나은 편이요.
哀彼嶺不戶 영하호(嶺下戶) 백성들은 가련하고나.
巨槓雙馬轎 큰 깃대 앞세우고 쌍마(雙馬) 수레 타고 오니,
服驂傾村塢 촌마을 사람들 모조리 동원하네.
被驅如太鷄 닭처럼 개처럼 내몰고 부리면서,
聲吼甚豺虎 소리치고 꾸중하기 범보다 더 심하네.
乘人古有戒 예로부터 가마 타는 자 지킬 계율 있었는데,
此道棄如土 지금은 이 계율 흙같이 버려졌네.
耘者棄其鋤 밭 갈다가 징발되면 호미 내던지고
飯者哺以吐 밥 먹다가 징발되면 먹던 음식 뱉어야 해.
無辜遭嗔暍 죄 없이 욕 먹고 꾸중 들으며,
萬死唯首俯 일만 번 죽어도 머리는 조아려야.
顦顇旣踰艱 병들고 지쳐서 험한 고비 넘기면,
噫吁始贖擄 그 때야 비로소 포로 신세 면하지만,
浩然揚傘去 사또는 일산(日傘)쓰고 호연(浩然)히 가 버릴 뿐,
片言無慰撫 한 마디 위로의 말 남기지 않네.
力盡近其畝 기진 맥진하여 논밭으로 돌아오면
呻唫命如縷 지친 몸 신음 소리 실낱 같은 목숨이네.
欲作肩與圖 이 가마 메는 그림 그려
歸而獻明主 임금님께 돌아가서 바치고 싶네.

[핵심 정리]
지은이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경기도 광주 출생.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호는 다산(茶山). 또는 여유당(與猶堂). 정조 13년에 남인(南人)의 불리한 처지를 극복하고 대과에 급제하여 정조의 총애를 받기도 한 실학자이다. 저서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등 아주 많다.
갈래 : 한시(漢詩)
연대 : 1832년
주제 : 부당한 현실에 대한 직시(直視)와 비판
출전 :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

▶ 작품 해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귀양에서 풀려나 향리로 돌아와 있을 때 지은 작품으로, 백성들의 삶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와 함께 풍자성이 강하게 나타나 모순된 시대 현실에 대한 정약용의 비판적 태도를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다.
작자는 먼저 관리의 가마를 메고 산으로 올라가는 영하호(嶺下戶) 주민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한 후, 가마 타는 즐거움은 알아도 가마 메는 괴로움은 모르는 관리들의 도덕적 무감각을 강하게 질타한다. 이런 비판 속에는,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작자의 진보적인 의식이 숨어 있다. 작자는 이러한 논리를 임금에게까지 적용시킨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임금이야말로 백성들에게 가마 메는 괴로움을 강요하는 가장 핵심적인 주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