隋煬帝의 제2차 고리 침략1/小寒節初候雁北鄕水雷屯梅花風5日(陰11/26)丙辰
《隋紀6 煬帝 大業 9年》 (癸酉,613)
①. 봄, 정월, 2일에 조서를 내려서 천하의 군사들을 징소하여 涿郡(定州 東部)에 집결하게 하였다. 처음으로 백성을 모집하여 '驍果(교과:용맹스런 군사)'라고 하고 요동의 옛 성(定州 東)을 수축하고 군량미를 비축하였다.
①. 春,正月,丁丑,詔徵天下兵集涿郡。始募民爲驍果〈爲驍果作逆張本。驍,古堯翻。〉脩遼東古城以貯軍糧。〈漢、晉以來,遼東郡皆治襄平,慕容氏始鎭平郭。前代高麗,圍遼東,言卽漢襄平城,今言復脩古城,蓋城郭有遷徒也。貯,丁呂翻。
④. 24일에 형부상서 위문승 등에게 명령하여 代王 양유를 보좌하여 서경에 남아서 지키게 하였다.
④. 己亥,命刑部尚書衞文昇等輔代王侑留守西京。〈是後李淵得以尊立代王。守,手又翻。〉
⑤. 2월 8일에 조서를 내렸다.
"우문술은 무기와 양식이 계속 이어지지 않아서 드디어 왕사를 구렁텅이에 빠지게 하였는데, 이는 군리들이 물자 지급의 시기를 놓쳤던 것이지 우문술의 죄가 아니므로 그의 관직과 직위를 회복시켜라."
얼마 지나서 또 개부의동삼사를 덧붙여주었다.
⑤. 二月,壬午,詔︰「宇文述以兵糧不繼,遂陷王師;〈事見上卷上年〉。乃軍吏失於支料,非述之罪,宜復其官爵。」〈《考異》曰︰《雜記》在去年十二月,今從《隋書》。〉尋又加開府儀同三司。
⑥. 황제가 侍臣들에게 말하였다.
"고리는 작은 오랑캐인데 상국을 능멸하였지만, 지금은 바다를 들어 산으로 옮기는 것이라도 오히려 능히 결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이런 오랑캐를 치는 것에서야?"
마침내 다시 고리를 토발할 것을 논의하였다. 좌광록대부 곽영이 말하였다.
"戎敵이 예를 잃은 것은 신하들이 처리할 일이고, 千鈞의 강한 弩는 생쥐를 잡기 위해서 쏘지 않는데, 어찌하여 친히 만승의 몸을 수고스럽게 하며 작은 오랑캐에 대적하려고 하십니까?"
황제는 더 듣지 않았다.
⑥. 帝謂待臣曰︰「高麗小虜,侮慢上國;今拔海移山,猶望克果,〈克,能也。果,決也。麗,力知翻。〉況此虜乎!」乃復議伐高麗。〈復,扶又翻。〉左光祿大夫郭榮諫︰「戎狄失禮,臣下之事;千鈞之弩,不爲鼷鼠發機,〈杜襲諫曹操嘗有是言。鼷,音奚,小鼠也。〉柰何親辱萬乘以敵小寇乎!」〈乘,繩證翻。〉帝不聽。
⑨. 3월 4일에 황제는 요동(정주 동)에 행차하여 민부상서 번자개 등에게 명령하여 월왕 양동을 보좌하여 동도에 남아서 지키게 하였다.
⑨. 戊寅,帝幸遼東,命民部尚書樊子蓋等〈開皇三年,改度支尚書爲戶部尚書,帝乃改爲民部尚書,併曹郎亦改之。〉輔越王侗留守東都。〈是後遂階王世充僭竊。侗,他紅翻。
⑪. 여름, 4월 27일에 거가가 요하(海河?)를 건넜다. 29일에 우문술을 파견하여 상대장군 양의신과 더불어 평양(今 遼陽?)을 향하게 하였다.
⑪. 夏,四月,庚午,車駕渡遼。壬申,遣宇文述與上大將軍楊義臣趣平壤。〈趣,七喻翻。〉
⑫. 좌광록대부 왕인공이 부여도(?)로 출발하였다. 왕인공이 진군하여 新城(定興:요동성?)에 도착하자 고리군 수만이 맞서 싸웠는데, 왕인공이 굳센 기병 1천을 인솔하고 그들을 공격하여 격파하니 고리는 嬰城(北京通州區潞城鎭)에서 농성하며 굳게 지켰다.
⑫. 左光祿大夫王仁恭出扶餘道。仁恭進軍至新城,〈新城在南蘇城之西。〉高麗兵數萬拒戰,仁恭帥勁騎一千擊破之,高麗嬰城固守。
황제가 제장들에게 명령하여 요동을 공격하게 하고 편의대로 일을 처리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飛樓(비루:이동형 누각)·橦車(당차:공성용 수레)·雲梯(운제:등성용 사다리)·地道(지도:땅굴)로 사방에서 함께 전진하여 밤 낮을 쉬지 않앗지만 그러나 고리군들의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여 그곳을 방어하여 20여 일이 되어도 점령하지 못하였으며, 공수 가운데 죽은 사람들이 많았다.
帝命諸將攻遼東,聽以便宜從事。〈麗,力知翻。帥,讀曰率。騎,奇寄翻。將,卽亮翻。〉飛樓、橦、雲梯、地道四面俱進,〈橦,宅江翻。〉晝夜不息,而高麗應變拒之,二十餘日不拔,主客死者甚衆。〈守者爲主,攻者爲客。〉
衝梯(충제:성문 공격용 사다리)의 장대 길이는 15장(≒44.4m)인데, 교과인 오흥 사람 심광이 그 끝에까지 올라가서 고리군과 더불어 싸웠는데, 십 수 명을 죽였으나 고리에서 다투어 그를 고역하여 추락하게 되었지만 아직 땅에 떨어지지 않았을 떄 장대에 달린 줄을 만나자 심광이 잡고서 다시 올라갔다. 황제가 바라보다가 그를 장하게 여기고 즉시 존산대부로 임명하고, 항상 좌우에 두었다.
衝梯竿長十五丈,驍果吳興沈光升其端,〈《隋志》︰吳郡烏程縣舊置吳興郡。史以舊郡名書。長,直亮翻。驍,堅堯翻;下同。〉臨城與高麗戰,短兵接,殺十數人,高麗競擊之而墜;未及地,適遇竿有垂絚,〈絚,古恆翻,索也。〉光接而復上。〈復,扶又翻。上,時掌翻。〉帝望見,壯之,卽拜朝散大夫,〈朝,直遙翻。散,悉但翻。〉恆置左右。〈恆,戶登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