常謹事四鄰,由是境內差安/사린을 공손하게 섬겨 비교적 안정되었다.
《後唐紀7 明宗 長興 4年》 (癸巳, 933)
2.민인들 가운데 진봉택(민왕 왕영균이 즉위 전 살았던 집)에 용이 나타났다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집의 이름을 고쳐서 용악궁이라 하였다.
2.春,正月,閩人有言真封宅龍見者,閩王延鈞更命其宅曰龍躍宮。
드디어 보황궁에 가서 책봉을 받고 의위를 갖추어 왕부에 들어가서 황제에 즉위하고 국호를 대민이라 하였으며, 크게 사면하고 연호를 고쳐서 용계라 하고 이름을 고쳐서 왕린이라 하였다.
遂詣寶皇宮受冊,備儀衛,入府,即皇帝位,國號大閩,大赦,改元龍啟;更名璘。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추존하여 오묘를 세웠다. 그의 요속인 이민을 좌복야·문하시랑으로 삼고 그의 아들인 절도뷰사 왕계봉을 우복야·중서시랑으로 삼고서 나란히 동평장사로 삼았고, 가까이 하는 관리인 오욱을 추밀사로 삼았다.
追尊父祖,立五廟。以其僚屬李敏為左僕射、門下侍郎,其子節度副使繼鵬為右僕射、中書侍郎,並同平章事;以親吏吳勖為樞密使。
당의 책례사인 배걸과 정간이 마침 해민에 도찯하자 민황이 배걸을 여경사로 삼았는데, 정간이 북쪽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굳게 요구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唐冊禮使裴傑、程侃適至海門,閩主以傑為如京使;侃固求北還,不許。
민황은 스스로 나라가 작고 땅이 치우쳐 있어 항상 사린을 공순히 섬겼고 이로 말미암아 경계 안은 대체적으로 안정되었다.
閩主自以國小地僻,常謹事四鄰,由是境內差安。
☞.閩國은 東南越, 七閩, 八閩, 九貊, 五戎 등으로 불렸으며 왕심지가 복건을 점령한 이래 5대 53년간(893~945) 존속하였다.
☞.五廟는 太祖와 二昭·二穆의 다섯 廟를 말한다.
☞.四隣은 북방으로는 吳越(항주), 서방으로는 南吳(강릉), 남방으로는 南漢(흥왕부), 동방으로는 대만해협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