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霖損稼/가을 장마로 수확이 줄었다.
《唐紀41 代宗 大曆 十二年》 (丁巳, 777)
20.경조윤 여간이 주문을 올려서 '가을 장마로 농작물이 줄었다.'고 하자. 한황이 주문을 올려서 '여간이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였는데, 황상이 어사에게 명하여 조사하여 살피도록 하니, 정미일에 돌아와 상주하였다.
20.冬,十月,京兆尹黎幹奏秋霖損稼,韓滉奏幹不實;上命御史按視,丁未,還奏,
"줄어든 것이 모두 3만여 경입니다."
위남 현령 유조가 탁지에게 붙어서 현의 경계 안에 있는 벼만은 홀로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하였는데, 어사 조계사 유조와 마찬가지로 아뢰었다.
「所損凡三萬餘頃。」渭南令劉澡阿附度支,稱縣境苗獨不損;御史趙計奏與澡同。
황상이 말하였다.
"장맛비가 넓게 두루 내렸는데, 어찌 위남만이 홀로 그런 일이 없는가!"
다시 어사 주오에게 명하여 이를 살피도록 하였는데, 줄어든 것이 3천여 경이었다.
황상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上曰「霖雨溥溥,豈得渭南獨無!」更命御史硃敖視之,損三千餘頃。上歎息久之,曰:
"현령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관리라면 줄어들지 않았어도 오히려 줄어들었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저들이 이처럼 어질지 않다는 것인가!"
유조를 남포현위로 조계는 예주사호로 좌천시켰지만, 한황에게는 묻지 않았다.
「縣令,字人之官,不損猶應言損,乃不仁如是乎!」貶澡南浦尉,計澧州司戶,而不問滉。
22. 병진일에 장진이 돌아와 주문을 올렸다.
"'상서로운 소금'은 실제로 한황이 말한 바와 같습니다."
22.內辰,蔣鎮還,奏「瑞鹽實如韓滉所言」,
이어서 표문을 올려 축하하며 청하기를 사신에게 맡겨서 널리 알리며, 훌륭한 이름을 내려 주도록 하였다. 황상이 이를 따라서 이름을 내려 '보응영경지'라고 하였다. 당시 사람들이 이를 더럽게 여겼다.
仍上表賀,請宣付史臣,並置神祠,錫以嘉名。上從之,賜號寶應靈慶池。時人醜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