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何乃前非而後是哉?/어찌 예전엔 옳지 않았다가 뒤에 옳게 되었을까?

solpee 2019. 4. 5. 18:34

《唐紀22則天聖后聖歷2己亥,699

 

 26. 봉각사인 위사립이 상소하였다.

 "요즈음 풍속이 점차 유학을 가볍게 여기니, 선황의 도는 해이되고 쇠퇴하여 강론하지를 않습니다. 마땅히 왕공 이하의 자제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모두 국학에 들어가도록 하고, 다른 길로 벼슬을 나가는 것을 들어 주지 마십시오.

 26.冬,十月,鳳閣舍人韋嗣立上疏,以為:「時俗侵輕儒學,先王之道,弛廢不講。宜令王公以下子弟,皆入國學,不聽以它岐仕進。

 

 또 양주와 예주의 사건이 난 이래로 옥사를 만드는 일이 점차 많아지니 혹리들이 틈을 타서 오로지 사람을 죽여가지고 승진하기를 구하였습니다. 폐하의 성스러움과 밝음에 힘입어 주흥·구신적·왕홍의·내준신이 서로 이어서 주살을 당하는 죄를 받아, 조정이나 백성들이 경축하며 편안하여 마치 다시 봄날을 보는 것 같습니다.

 又,自揚、豫以來,制獄漸繁,酷吏乘間,專欲殺人以求進。賴陛下聖明,周、丘、王、來相繼誅殛,朝野慶泰,若再睹陽和。

 

 예컨데 적인걸과 위원충이 예전에 국문을 당하여 조사를 받게 되기까지 이르렀는데, 역시 모두 스스로 거짓으로 꾸며 폐하의 밝으신 살핌이 아니었다면 곧 젓 담겨졌을 것이며, 지금 페하께서 그들을 올려서 쓰니 모두 훌륭한 보필자가 되었습니다.

 至如仁傑、元忠,往遭按鞫,亦皆自誣,非陛下明察,則已為菹醢矣;今陛下升而用之,皆為良輔。

 

 어찌 마침내 예전에 옳지 않았다가 뒤에는 옳게 된 것이겠습니까? 참으로 억울함에 빠진 것으로부터 살펴서 밝혔을 뿐입니다. 신이 두려운 것은 최근에 억울하게 죄를 쓰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고, 또한 모두 그와 같다는 것입니다.

 何乃前非而後是哉?誠由枉陷與甄明耳。臣恐向之負冤得罪者甚眾,亦皆如是。

 

 엎드려 바라건데 폐하께서는 하늘과 땅의 어짐을 넓히시고 천둥과 비처럼 은혜를 펼치셔서, 수공 이래로부터 지은죄의 가볍고 무거움을 가릴 것 없이, 하나같이 모두 밝게 씻어주시고, 죽은 사람에게는 관작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며, 산 사람에게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을 하락하여 주십시오.

 伏望陛下弘天地之仁,廣雷雨之施,自垂拱以來,罪無輕重,一皆昭洗,死者追復官爵,生者聽還鄉里。

 

 이와 같이 하면 천하에서 예전에 억울함이 넘쳐났던 것은 폐하의 뜻이 아니며 모두 옥리의 허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저승과 이승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느낌이 온화한 기운을 통하게 하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무후가 따를 수가 없었다.

 如此,則天下皆知昔之枉濫,非陛下之意,皆獄吏之辜,幽明歡欣,感通和氣。」太后不能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