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愛克厥威,允罔功/ 가까움이 위엄을 누르면 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solpee 2019. 1. 8. 19:19

《東晉 孝武帝 太元 5年》 〈庚辰、380〉

 

 ②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무릇 공이 있음에도 상을 내리지 않고 죄가 있음에도 벌하지 않으면 비록 요임금과 순임금이라도 다스릴 수 없는데, 하물며 다른 사람인 경우에야! 진왕 부견이 반란한 사람을 잡고도 번번이 이를 용서해주어 그 신하들로 하여금 반역하는 일에 익숙하게 하니, 음흉한 일을 하면서도 요행을 바라게 한 것이고, 비록 힘이 꿀려서 사로잡혔어도 오히려 벌받을 걱정을 하지 않게 하였으니 환난이 어찌 스스로 그치겠습니까?

 ②臣光曰:夫有功不賞,有罪不誅,雖堯、舜不能爲治,用漢宣帝詔而略變其文。治,直吏翻。況他人乎!秦王堅每得反者輒宥之,使其臣狃於爲逆,狃,狎也。行險徼幸,徼,堅堯翻。雖力屈被擒,猶不憂死,亂何自而息哉!

 

 《서경》에서 말하였습니다. '위엄이 아끼는 것을 누르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지만, 아끼는 것이 위엄을 누르면 반드시 공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또《시경》에서 말하였습니다. '속이거나 교활한 사람을 제멋대로 내버려두지 말고 삼가 망극하게 하며, 노략질하고 포악한 사람을 막아야 하는데, 그에게 간특한 짓을 못하게 하라.' 지금 부견이 이러한 말들을 어겼으니 어찌 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書》曰:「威克厥愛,允濟;愛克厥威,允罔功。」《書‧胤征》之辭。《詩》云:「毋縱詭隨,以謹罔極;式遏寇虐,無俾作慝。」《詩‧民勞》第三章之辭。今堅違之,能無亡乎!

 

太元 八年 〈癸未、383〉

 

 ⑥...肥水之戰:...진왕 부견과 양평공 부융이 수양성에 올라가 이를 바라보았는데, 진군의 진지가 엄정한 것을 보고, 또 팔공산 위의 초목들을 바라보고 모두 진의 병사로 여기고 부융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또한 강한 적인데, 어찌 약하다고 했는가!"

 낙심하여 비로소 두려운 얼굴색이 되었다.

 ⑥...肥水之戰:...秦王堅與陽平公融登壽陽城望之,見晉兵部陣嚴整,又望八公山上草木皆以爲晉兵,八公山在今壽春縣北四里。世傳漢淮南王安好神仙,忽有八公皆鬚眉皓素,詣門求見。門者曰:「吾王好長生,今先生無駐衰之術,未敢以聞。」八公皆變成童。遂立廟於山上。或言今廟食于此山者,乃左吳、朱驕、伍被、雷被等八人,皆淮南王客,世以八公爲仙,誤也。顧謂融曰:「此亦勍敵,何謂弱也!」勍,渠京翻,強也。憮然始有懼色。憮,罔甫翻,悵然失意貌。

 

 秦軍이 비수 가까이 진을 치자 晉軍은 건널 수가 없었다. 사현이 사정을 보내 양평공 부융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현군이 너무 깊이 들어와서 물에 근접하여 진을 치니, 이는 장기전 계책이고 빨리 싸우자는 것이 아니군요. 만약 진지를 조금 뒤로 물려주셔서 우리를 건널 수 있게 한 뒤에 승부를 빨리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秦의 제장들이 모두 말하였다.

 "우리는 많고 저들은 적어서 그들을 막아 올라올 수 없게 하여 만전을 기하는 것만 못합니다."

 부견이 말하였다.

 "다만 군사를 이끌고 조금 물러나게 해서 그들에게 절반 쯤 건너게 한 다음 우리의 철기로 습격한다면 이기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부융도 또한 그렇다고 여기고 마침내 군사를 물러나게 하였다.

 秦兵逼肥水而陳,晉兵不得渡。謝玄遣使謂陽平公融曰:「君懸軍深入,而置陳逼水,此乃持久之計,非欲速戰者也。若移陳少卻,少,詩沼翻;下同。使晉兵得渡,以決勝負,不亦善乎!」秦諸將皆曰:「我衆彼寡,不如遏之,使不得上,上,時掌翻。可以萬全。」堅曰:「但引兵少卻,使之半渡,我以鐵騎蹙而殺之,蔑不勝矣!」融亦以爲然,遂麾兵使卻。

 

 

 秦軍 백만이 무질서하게 물러나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다. 사현·사염·환이 등이 신속히 물을 건너 그들을 공격하였다. 부융이 말을 타고 달려 진지를 순행하며 물러나는 군사들을 되돌리려 하였으나, 말이 쓰러져서 晉兵에게 죽자, 秦軍은 마침내 붕괴되었다. 晉軍은 파죽지세를 타고 청강에 이르렀고, 秦軍은 붕괴되어 스스로 짓밟고 서로 밟혀서 죽은 병사들이 들을 채우고 내를 메웠다. 그들은 바람소리와 새 소리만 듣고도 모두 晉軍으로 착각하여 밤과 낮을 쉬지 않고 풀숲을 헤치며 걷고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고, 거듭 굶주리고 얼어서 죽은 사람이 열에 일곱 여덟이었다.

 秦兵遂退,不可復止。兩陳相向,退者先敗,此用兵之常勢也。復,扶又翻。謝玄、謝琰、桓伊等引兵渡水擊之。融馳騎略陳,欲以帥退者,帥,讀曰率。馬倒,爲晉兵所殺,秦兵遂潰。玄等乘勝追擊,至于青岡;青岡去今壽春縣三十里。秦兵大敗,自相蹈藉而死者,蔽野塞川。言敗兵自相蹈踐,枕藉而死也。藉,慈夜翻。塞,悉則翻。其走者聞風聲鶴唳,皆以爲晉兵且至,晝夜不敢息,草行露宿,草行者,涉草而行,不敢由路;露宿者,宿於野次,不敢入人家;皆懼追兵也。重以飢凍,重,直用翻。死者什七、八。

 

 애초에, 秦의 군사가 조금 물러났을 때 물러나는 秦軍의 대열 속에서 晉의 주서등이 뒤에서 소리쳐서 말하였다.

 "秦軍이 패하였다."

 무리들이 놀라 크게 달아났다. 주서는 이어서 장천석 서현 등 과 더불어 도망쳐서 돌아왔다. 秦王 부견이 타던 운모거를 포획하였다. 다시 수양을 탈취하고, 회남 태수 곽포를 사로잡았다.

 初,秦兵少卻,朱序在陳後呼曰:呼,火故翻。「秦兵敗矣!」衆遂大奔。序因與張天錫、徐元喜皆來奔。獲秦王堅所乘雲母車。【章:十二行本「車」下有「及儀服、器械、軍資、珍寶、畜產不可勝計」十五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晉制:雲母車,以雲母飾犢車;臣下不得乘,以賜王公耳。趙彥絟《續古今註》:石虎皇后乘輦,以純雲母代紗,四望皆通徹。復取壽陽,執其淮南太守郭褒。晉復取壽陽,故秦所置太守見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