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古無不亡之國,不掘之墓/예로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 없고,파헤쳐지지 않은 무덤 없다.
《東晉 元帝 太興 3年》 〈庚辰、320〉
⑩시중인 교예와 화포가 상소문을 올려 간하였다.
"...위문공은 혼란스럽고 망하였던 뒤를 잇자 쓰는 것을 절약하고 백성을 아껴서 궁실을 세우는 것도 그 당시의 제도에 맞도록 하였으니 그러므로 강숙이 세운 큰 업적을 일으킬 수 있었고, 나라를 900년간이나 이어갔습니다....
진시황을 장사지내며 三泉을 굳게 막아버렸지만 장사지낸 흙이 다 마르기도 전에 파헤쳐져서 훼손되었습니다.
⑩...전략...侍中喬豫、和苞上疏諫,以爲:「衞文公承亂亡之後,節用愛民,營建宮室,得其時制,故能興康叔之業,延九百之祚。〈衞爲狄人所滅,文公徙居楚丘,大布之衣,大帛之冠,務材訓農,通商惠工,始建城市而營宮室,得其時制,百姓悅之,國家殷富,衞以復興。自康叔始封於衞,至秦始滅,延祚九百餘年。〉...중략...秦始皇下錮三泉,土未乾而發毀。〈詳見三十一卷漢成帝永始元年劉向封事。乾,音干。〉
예로부터 망하지 않은 나라와 파헤쳐지지 않은 무덤이 없으니, 그러므로 성스러운 임금은 검소하게 장사를 지내서 마침내 깊이 먼 장래까지를 염려하는 것입니다. 폐하께서 중흥하는 시절에 나라를 망칠 일을 뒤좇아 하려고 하십니까?"
自古無不亡之國,不掘之墓,故聖王之儉葬,乃深遠之慮也。陛下柰何於中興之日,〈曜平靳氏之難而自立,故其臣謂之中興。〉而踵亡國之事乎!」
⑪...조적이 군대에 있으면서 장사들과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하고 자기를 절제하고 힘써 베풀고, 농업과 잠업을 힘써 권고하고 새로이 귀부한 사람들을 위로하며 받아주었는데, 비록 관계가 소원하고 천한 사람일지라도 모두에게 은혜와 예의로써 교제하였다.
⑪...逖在軍,與將士同甘苦,約己務施,〈施,式豉翻。〉勸課農桑,撫納新附,雖疏賤者皆結以恩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