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前車已覆而後車又將尋之也。/앞 수레가 넘어졌는데 뒤 수레가 똑 같은 길을 가다.

solpee 2018. 12. 22. 10:31

晉 愍帝 建興 元年》 〈癸酉、313〉

 

 ①봄, 정월, 초하루 정축일에 한의 황제 유총이 광극전에서 여러 신하들에게 연회를 베풀고 회제에게 푸른 옷(평민 옷)을 입고 술을 돌리게 하였다. 유민·왕준 등은 슬프고 분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큰 소리로 통곡하니 유총이 이를 싫어하였다.

 ①春,正月,丁丑朔,漢主聰宴羣臣於光極殿,使懷帝著青衣行酒。著,陟略翻。庾珉、王雋等不勝悲憤,因號哭;聰惡之。勝,音升。號,戶刀翻。惡,烏路翻。

 

 어떤 사람이 유민 등이 평양을 가지고 유곤에게 호응하려고 한다고 고발하니, 2월 정미일에 유총이 유민·완준 등 옛날 진의 신하이던 10여 명을 죽이고, 회제 역시 죽엿다. 대사면령을 내리고 다시 회계유부인(자기 귀인의 딸을 회제에게 주었다가 다시 회수함)을 귀인으로 삼았다.

 有告珉等謀以平陽應劉琨者,二月,丁未,聰殺珉、雋等故晉臣十餘人,永嘉三年,珉、雋與帝俱沒于虜。懷帝亦遇害年三十。大赦,復以會稽劉夫人爲貴人永嘉六年,聰以夫人妻帝,聰封帝爲會稽公,故曰會稽劉夫人。會,工外翻。

 

 순숭이 말하였다.

 "회제는 천성과 자태는 맑고 높았으며, 젊어서도 영민함을 드러냈으니 승평의 시대를 만났더라면 법도를 지키는 훌륭한 군주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혜제시대의 요란한 시대의 뒤를 이어받았고, 동해왕 사마월이 정치를 오로지하였던 연고로 幽王·厲王 같은 흠집이 없었지만 흘러 다니다 포로로 살해 당하는 화를 입었다.

 荀崧曰:懷帝天姿清劭,劭,高也。少著英猷,少,詩照翻。若遇承平,足爲守文佳主。而繼惠帝擾亂之後,東海專政,故無幽、厲之釁而有流亡之禍矣!

 

 

⑨...사마예의 참모들은 대부분 일을 피하며 스스로 즐기기만 하니 녹사참군 진군이 말하였다.

  "낙양이 평화로울 때 조정의 인사들은 조심하고 공손하며 삼가는 것이 보통의 풍습이어서,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오만하고 방자한 것을 우아하다고 생각하였으니, 이러한 풍조가 물들어서 나라를 실패에 이르도록 하였습니다.

⑨...睿參佐多避事自逸,錄事參軍陳頵錄事參軍,掌總錄衆曹,管其文案,自上佐以下,違失者彈正以法,掌凡諸司察之事。《白氏六帖》曰:州主簿、郡督郵,並今錄事參軍之職。余據睿以頵爲錄事參軍,自別有主簿,詳見《辨誤》。言於睿曰:「洛中承平之時,朝士以小心恭恪爲凡俗,以偃蹇倨肆爲優雅,流風相染,以至敗國。朝,直遙翻。敗,補邁翻。

 

 지금 관료에 속한 사람들이 모두 서대(낙양)시절의 폐단을 이어받아 스스로 높아지는 것을 바라고 있으니, 이는 앞에 간 수레가 이미 넘어졌는데, 뒤따르는 수레가 또 장차 그 길을 좇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청컨데 지금부터 일을 시키면 병이 들었다고 하는 사람은 모두 면직시키십시오."

 사마에는 좇지 않았다.

 今僚屬皆承西臺餘弊,江東謂洛都爲西臺。養望自高,是前車已覆而後車又將尋之也。請自今,臨使稱疾者,皆免官。」睿不從。


 ⑱응원이 편지를 올렸다.

 "군사가 일어난 이후로 일을 처리함에 있어서, 율령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며 다투어 가면서 새로운 의견을 내고, 일이 닥치면 바로 제도를 만들고, 아침에 만들었다가 저녁에 고치게 되어 주관하는 사람의 경우에도 감히 법에 맡겨서 일을 처리할 수 없어서 법번이 자문을 구하게 되니 정치하는 체제가 아닙니다.

 ⑱熊遠上書,以爲:「軍興以來,處事不用律令,處,昌呂翻競作新意,臨事立制,朝作夕改,至於主者不敢任法,每輒關諮,關,白也非爲政之體也。

 

 어리석은 제가 생각하기로는 무릇 반박하고 논의하는 사람은 모두 마땅히 율령· 경전을 인용하여야 하고, 곧바로 인정을 내세워 말해서는 안되니, 준칙에 의가하는 바를 좇아서 열어놓거나 막아 버리며 임시방편으로 일을 처리하는데, 이는 임금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신허된 사람이 전용해야 할 것은 아닙니다."

 사마예는 당시에 바야흐로 많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좇을 수가 없었다。

 愚謂凡爲駁議者,皆當引律令、經傳駁,北角翻。傳,直戀翻。不得直以情言,無所依準,以虧舊典。若開塞隨宜塞,悉則翻。權道制物,此是人君之所得行,非臣子所宜專用也。」睿以時方多事,不能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