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9일 오전 09:28
《孝獻帝 建安 24年》 〈己亥、219〉
⑦.익주의 전부사마인 건위 사람 불시를 파견하여 즉시 관우에게 인수를 주었는데, 관우는 황충의 지위가 자기와 대등하다는 소식을 듣고 화를 내며 말하였다.
"대장부는 끝내 늙은 병사와 더불어 같은 반열에 있을 수 없다."
하고 절하려고 하지 않았다.
불시가 관우에게 말하였다.
"무릇 왕업을 세우는 것에는 쓰이는 것이 한결같지가 않은 법이오. 옛날 소하와 조참은 고조와 젊어서는 친구였고, 진평과 한신은 망명하여 뒤에 합류하였는데 그 반열을 논의하면서는 한신이 가장 위에 있게 하였지만 아직 소하와 조참이 이것을 가지고 원망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소.
지금 한중왕이 한때의 공로를 가지고서 한실을 높이고 있소. 그러나 속으로 가볍고 무겁게 생각하는 것은 어찌 그대에게 군후와 같겠소? 또한 왕과 군후는 비유하자면 오히려 한 몸이니, 함께 휴식하고 같이 슬퍼하고 화와 복을 함꼐 하는 것이오. 어리석은 저는 군후께서 의당 관호의 높고 낮음이나, 작록의 많고 적음을 마음속에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일개의 심부름꾼이며, 함명하는 사람이니, 군후께서 절하며 받지 않는다면 이대로 돌아갈 것이며 단지 서로 이러한 행동을 애석하게 여기며 후회함이 있을까만 두려울 뿐입니다."
관우가 크게 느끼고 깨달아 즉시 황급히 받고 절하였다.
⑦.秋,七月,...
遣益州前部司馬犍爲費詩卽授關羽印綬,〈犍,居言翻。費,父沸翻。〉羽聞黃忠位與己並,怒曰:「大丈夫終不與老兵同列!」不肯受拜。詩謂羽曰:「夫立王業者,所用非一。昔蕭、曹與高祖少小親舊,〈少,詩照翻。〉而陳、韓亡命後至;論其班列,韓最居上,〈謂陳平、韓信自楚而來,韓信王而蕭、曹侯,故曰韓最居上。〉未聞蕭、曹以此爲怨。今漢中王以一時之功隆崇漢升;然意之輕重,寧當與君侯齊乎!〈言備以一時使忠與羽班,而意之輕重則不在此。曹操嘗表羽爲漢壽亭侯,故稱之爲君侯。〉且王與君侯譬猶一體,同休等戚,禍福共之;愚謂君侯不宜計官號之高下、爵祿之多少爲意也。僕一介之使,〈使,疏吏翻。〉銜命之人,君侯不受拜,如是便還,但相爲惜此舉動,〈爲,于僞翻。〉恐有後悔耳。」羽大感悟,遽卽受拜。
《魏 世祖 文帝 黃初 元年》 〈庚子、220〉
① 봄, 정월에 무왕이 낙양에 이르렀다가 경자일에 죽었다.
왕(조조)은 사람됨을 알아보고 살펴보기를 잘하여 거짓으로 현혹시키기가 어려웠다. 기이한 재주를 가진 자를 알아서 발탁하였고, 신분이 미천함에도 구애받지 않고 능력에 따라 일을 맡겼으므로 모든 사람이 그에 쓰임에 적당한 자리를 얻었다.
적과 대전할 때에도 뜻하는 것과 생각하는 것이 편안하고 한가로워서 마치 싸울 의욕이 없는 것처럼 보였지만 기회를 결정하고 이길 기세를 타면 그 기세가 차고 넘쳤다.
공훈을 세우거나 수고한 자에게는 마땅히 상을 베풀었는데, 천금을 아끼지 아니하였고, 아무런 공로를 세우지도 않고 은혜가 베풀어지기를 바라면 터럭만큼도 나누어 주는 것이 없었다.
법률을 시행함에 있었어는 준엄하고 신속하였으며, 범법을 하면 반드시 주륙을 하였는데, 혹 그런 자를 마주하고 눈물을 흘릴 수는 있었지만 끝내 사면하는 일이 없었다. 고아한 성품에 절약하고 검소하여 화려함을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여러 많은 영웅들을 무찔러서 해내를 거의 평정하였다.
①春,正月,武王至洛陽;庚子,薨。〈魏王操諡曰武。〉王知人善察,難眩以僞。〈眩者,目無常主;難眩以僞,謂人不能亂其明。〉識拔奇才,不拘微賤,隨能任使,皆獲其用。與敵對陳,〈陳,讀曰陣。〉意思安閑,〈思,相吏翻。〉如不欲戰然;及至決機乘勝,氣勢盈溢。勳勞宜賞,不吝千金;無功望施,〈施,式豉翻。〉分豪不與。〈豪,卽毫字。〉用法峻急,有犯必戮,或對之流涕,然終無所赦。雅性節儉,不好華麗。〈好,呼到翻。〉故能芟刈羣雄,幾平海內。〈曰「幾」者,以不能幷吳、蜀也。芟,所銜翻。幾,居布翻。〉
⑥어환(삼국시대 《위략》50권을 쓴 역사가)이 평론하였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가난한 사람은 검소한 생활을 배우지 않고, 비천한 사람은 공손함을 배우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사람의 본성에 차별이 있어서가 아니라 형세가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다. 가령 태조(조조)가 조식 등을 옛 경계에서 막았다면 이는 현명한 마음일 터인데, 어떠한 연유로 넘보려는 희망을 갖게 하였는가?
조창은 한을 품었어도 오히려 이를 수 없었는데, 조식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어찌 어려운 일을 일으킬 수 있었는가? 마침내 양수로 하여금 의지하고 따르게 하였다가 해로움을 만나게 하였고, 정의는 바라는 뜻대로 하려다가 일족이 주멸되었으니, 슬픈 일이로다."
⑥魚豢論曰:諺言:「貧不學儉,卑不學恭。」非人性分殊也,〈分,扶問翻。〉勢使然耳。假令太祖防遏植等在於疇昔,此賢之心,何緣有窺望乎!彰之挾恨,尚無所至;至於植者,豈能興難!〈難,乃旦翻。〉乃令楊脩以倚注遇害,丁儀以希意族滅,哀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