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2일 오전 09:47
《孝桓帝 永康 元年》 〈丁未 167〉
황제의 마음이 조금 누그러져 증상시 왕보에게 옥중으로 가서 당인인 법방 등을 심문하도록 했는데, 모두 세 군데를 나무에 메달고 얼굴을 자루에 씌워 계단 아래에 내버려 두었다. 왕보가 그들을 차례로 나무라며 말하였다.
"경 등이 번갈아 가며 서로 뽑아 천거하고, 교대로 입술과 이처럼 되었으니 그 의도가 무엇이오?"
범방이 대답했다.
"중니께서 말씀하시기를 '착한 일을 보거든 그것에 좇아가지 못한 듯이 하고 악한 일을 보고든 끓는 물을 찾은 것처럼 하라.'고 했소. 나 범방은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선하다 하면서 그의 깨끗함과 똑 같게 하려고 하였고, 악한 것을 미워하면서 그 더러운 것과 똑같게 보려고 하였던 것은 왕도정치를 한다는 소리를 듣기를 원하였던 것이지 당을 만들었다고는 깨닫지 못 하였소.
옛날에는 선한 행실을 닦으면서 스스로 많은 복을 받으려고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선한 행실을 행하면 몸이 죽임에 빠지게 되었소. 이 몸이 죽는 날에 바라건데, 나 범방을 수양산 곁에 묻어주어서 위로는 하늘의 뜻을 저버리지 않게 하고, 아래로는 백이와 숙제에게 부끄럽지 않게 해주시오."
帝意稍解,使中常侍王甫就獄訊黨人范滂等,皆三木囊頭,暴於階下,〈賢曰:三木,頭及手、足皆有械,更以物蒙覆其頭也。〉甫以次辯詰曰:「卿等更相拔舉,〈更,工衡翻。〉迭爲脣齒,其意如何?」滂曰:「仲尼之言,『見善如不及,見惡如探湯,』〈賢曰:探湯,喻去之疾也,見《論語》。探,吐南翻。〉滂欲使善善同其清,惡惡同其汙,謂王政之所願聞,不悟更以爲黨。古之脩善,自求多福。今之脩善,身陷大戮。身死之日,願埋滂於首陽山側,上不負皇天,下不愧夷、齊。」〈賢曰:伯夷、叔齊餓死首陽山,事見《史記》。首陽山,在雒陽東北。杜佑曰:偃師縣有首陽山。〉
왕보는 그를 불쌍히 여겨서 얼굴빛을 고치고서 나란히 질곡을 풀어주었다. 이응 등이 또 환관 자제들을 많이 끌어들이니, 환관들이 두려워하여 황제에게 천시로 보아 의당 사면해 주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6월 경신일에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고쳤으며, 당인 200여명을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이름을 삼부에 기록해 두고 종신토록 금고형에 처했다.
甫愍然爲之改容,乃得並解桎梏。〈鄭玄註《周禮》曰:木在手曰桎,在足曰梏。桎,之日翻。梏,工沃翻。〉李膺等又多引宦官子弟,宦官懼,請帝以天時宜赦。六月,庚申,赦天下,改元;黨人二百餘人皆歸田里,書名三府,禁錮終身。〈《考異》曰:《帝紀》於去年冬書「李膺等二百餘人受誣爲黨人,並坐下獄,書名三府。」按陳蕃以訟李膺,免。卽膺等下獄已在前,後遇赦,方得書名三府。則《帝紀》所紀,爲兩無所用,故去之。又故書「三府」爲「王府」,劉攽曰:當爲「三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