破鏡重圓, 破镜重圆 [pò jìng chóng yuán]017년 10월 15일 오전 09:20
破鏡重圓, 破镜重圆 [pò jìng chóng yuán]
깨졌던 거울이 다시 합쳐지다. 헤어졌던 부부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출전】
깨졌던 거울이 다시 합쳐지다. 헤어졌던 부부가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남북조시대 北周의 승상 楊堅은 나이 어린 황제 靜帝를 죽이고 스스로 제위에 올라 隋나라를 세운 다음 남조의 마지막 왕조 陳을 공격했다. 당시에 진의 황제인 後主 陳叔寶는 나라가 망해 가는데도 주색에만 빠져 있었다.「당시에 진나라 태자의 舍人이었던 徐德言의 부인은 진숙보의 여동생으로 樂昌공주에 봉해졌으며, 재주와 미모가 뛰어난 여인이었다. 진나라의 정세가 혼란스러워지자 서덕언은 아내를 지켜 줄 수 없음을 알고 아내에게 말했다. “그대의 재능과 용모로는 나라가 망한 후 틀림없이 권세 있는 집안으로 넘어갈 것이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헤어지게 될 것이오.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게 될 터이니 그렇게 되리라고 믿읍시다.” 그러고는 거울을 깨어 반쪽씩 나누어 갖고 약속을 했다. “반드시 정월 보름에 도성의 시장에다 팔도록 하시오. 내가 거기에 있다가 그날로 그대를 찾아갈 것이오.” 진나라가 망하자 낙창공주는 과연 越公 楊素의 집으로 넘어갔는데, 지극한 총애를 받았다. 서덕언은 유리방황 갖은 고생을 다하며 겨우 수도로 가, 마침내 정월 보름에 시장에 갔다. 어떤 하인이 거울을 팔고 있었는데 너무 높은 값을 부르자 모든 사람이 다 비웃었다. 서덕언은 그를 숙소로 데려가 밥을 대접하고 그간의 사정을 일일이 말해 주었다. 서덕언은 나머지 반쪽 거울을 꺼내 맞추어 보고는 시를 지었다.
'거울과 사람이 함께 떠나,
거울은 돌아왔는데 사람은 돌아오지 않네.
다시는 항아의 모습 담지 못하리니,
헛되이 밝은 달만 휘영청 남았네.'
낙창공주는 이 시를 보고 울기만 하고 식음을 전폐했다. 양소가 이를 알고 비통해하며 즉시 서덕언을 불러 아내를 데려가도록 했으며, 많은 재물을 주었다. 이 말을 듣고 감탄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 낙창공주는 드디어 서덕언과 함께 江南으로 돌아가 평생을 함께했다.
(陳太子舍人徐德言之妻, 後主叔寶之妹, 封樂昌公主, 才色冠絶. 時陳政方亂, 德言知不相保, 謂其妻曰,
以君之才容, 國亡必入權豪之家, 斯永絶矣. 償情緣未斷, 猶冀相見, 宜有以信之. 乃破一鏡, 各執其半, 約曰, 他日必以正月望, 賣於都市, 我當在,
卽以是日訪之. 及陳亡, 其妻果入越公楊素之家, 寵嬖殊厚. 德言流离辛苦, 僅能至京, 遂以正月望訪於都市. 有蒼頭賣半鏡者, 大高其價, 人皆笑之.
德言直引至其居, 設食, 具言其故. 德言出半鏡以合之, 乃題詩曰, 鏡與人俱去, 鏡歸人不歸, 無復姮娥影, 空留明月輝. 陳氏得詩, 涕泣不食. 素知之,
愴然改容, 卽召德言, 還其妻, 仍厚遺之. 聞者無不感嘆. ······ 遂與德言歸江南, 竟以終老.)」
이 이야기는 孟棨의 《本事詩 〈情感〉》에 나오는데, 거울을 깨서 나누어 가졌다가 다시 거울을 맞추었다는 데서 유래하여 ‘파경중원’은 헤어졌던 부부가 다시 결합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파경’은 부부 관계가 깨어지는 것을 말한다.
破镜重圆是汉语成语,读作 pò jìng chóng yuán,一词出自宋·李致远《碧牡丹》:“破镜重圆,分钗合钿,重寻绣户珠箔。” 比喻夫妻失散或决裂后重新团聚与和好。